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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25.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15

11장 4일째 저녁

315.


 엄마는 말리려 하지 않았다.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는개의 머리를 쓰다듬는 새아빠의 행동을 알고도 모른척했다. 는개는 수치심이 독버섯처럼 피어올랐다. 무릎 위의 작은 두 손은 주먹을 쥐었다. 주먹을 쥔 작은 손은 진동으로 울리는 휴대 전화기처럼 서럽게 떨렸다. 새아빠의 손길은 우호적이라든가 는개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손길이 아니었다. 욕구를 채우려는 움직임이었다. 새아빠의 손놀림이라는 것은 산속을 일주일 헤매다가 어떤 벌레의 유충을 발견해 배가 너무 고파 입에 넣었는데 애벌레가 입 안에서 툭 터진 채로 꾸물꾸물 움직이는 징그러움이 새아빠의 손짓에 서려있었다.


 그 손짓이 늘어갈수록 하느님의 가증스러운 개입을 는개는 바랐지만 그런 일은 당연하게도 일어나지 않았다. 절대적인 존재 하느님은 언제나 바빠서 나 같은 사람의 기도 같은 건 들어주지 않았다. 는개는 매일 지속되는 새아빠의 쓰다듬기가 끝이 나면 상상 이상의 수치심에 주먹을 쥐고 있는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했다. 새아빠는 는개의 머리를 쓰다듬고 귀를 만지는 것 이상은 넘어서지 않았다. 새아빠는 가끔 집에서 자신에게 일을 배우는 사내들을 불러 무엇인가 모종의 이야기를 나눴고 저녁을 먹고 나면 는개는 책상에 인형처럼 꼿꼿하게 앉아 있었고 새아빠의 머리 쓰다듬기는 이어졌다.


 는개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고 여름을 지나서부터 는개에게 말을 하며 용돈을 쥐어주던 새아빠가 변했다. 는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던 새아빠의 말이 사라졌다. 소변을 보는 것처럼 그저 문을 열고 들어와서 머리를 한없이 쓰다듬고 머리카락을 만지고 귀를 만졌다. 는개는 새아빠가 머리를 만지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빨리 중학생이 되어 초등학생에서 벗어나는 순간 집을 나가야겠다. 할머니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할까.


 는개는 다른 방법을 떠올려봤지만 생각 속으로 철사가 촘촘히 박혀있는 검은 벌레가 나타나서 생각을 흩뜨렸다. 그 벌레가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몸이 갑자기 떨리며 체온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무 뒤에 숨을 죽이고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 거대한 벌레가 녹색의 액을 흘리고 은밀한 소리를 내며 다가올 때의 공포가 새아빠의 손짓에 고스란히 있었다. 정신이 모호해지고 몸이 심하게 떨렸다. 오래된 엔진이 시동으로 요동을 치듯 몸이 떨려왔다. 는개는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는 것을 참아내기 위해 이를 꽉 깨물었다. 얼마나 세게 물었던지 어린 는개의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양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이를 꽉 깨물듯 주먹을 세게 꽉 쥐었다. 예쁘게 자란 손톱의 끝이 손바닥을 뚫었고 땀과 함께 피가 섞여 나왔다. 어린양을 잡아서 먹이를 가지고 노는 시뻘건 눈알의 육식동물처럼 새아빠의 손은 선을 넘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의 욕구를 채웠다. 그에 비해 는개의 의지는 너무나 약했고 미미했다. 는개의 힘은 철사가 박혀있는 의지 강한 벌레에 비해 바다에 떠 있는 줄 끊어진 작은 돛단배처럼 위태롭고 약하기만 했다. 는개는 이를 더욱 깨물었고 그 힘이 머리의 신경까지 전달될 때마다 얼굴은 극심하게 일그러졌다. 손톱은 손바닥의 상처를 더욱 드세게 짓눌렀다. 는개는 손바닥의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정신은 끈을 놓으려고 했다. 발바닥이 방바닥에 닿아있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고 몸이 차가워졌다가 뜨거워지는 반복의 주기가 빨라졌다. 하체가 뜨겁게 타오르는 것을 느끼며 는개는 그대로 의자 밑으로 쓰러졌다. 다리를 타고 내려온 피가 방바닥을 붉게 물들이니 새아빠가 놀라서 는개의 엄마의 불렀고 는개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하혈은 심각해서 는개의 임신 여부가 앞으로 불투명했고 는개의 엄마는 아이를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식은 강낭콩처럼 는개의 몸은 차가웠다. 퇴원을 하고 는개는 이름처럼 더욱 늘어진 안개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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