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Jan 02.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23

11장 4일째 저녁

323.


 “전 이 회사에 입사해서 원하던 당신을 만났어요. 그런데 당신은 저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더군요. 어떤 무엇인가에 의해서 당신의 머리 주위에서 빙빙 돌아가던 우로보로스의 빛의 형상 같은 것 말이죠, 표현하기 힘든 그 무엇에 의해서 당신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당신 자의로 기억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죠. 그래서 오늘까지 기다렸는지도 몰라요. 왜 머리를 묶고 얼굴을 전부 드러내 놓고 다니는지 이제 알겠죠?” 는개는 잠시 미소를 지었다. 없던 보조개가 입술 옆에 수줍게 드러났다.


 “당신의 곁에서 맴돌며 나를 알아봐 주기를 기다렸어요. 천천히 기다리기로 마음먹은 후부터는 조바심은 없었어요. 시간이 흐르면 나를 알아 봐주리라. 당신은 이 회사를 관두지 않을 것이고 나 역시 그러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데 말이에요. 초조해지기 시작했어요. 당신에게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나의 존재를 당신에게 빨리 말하지 않으면 당신은 어쩐지 떠날 것만 같았어요. 당신은 어딘가로 완전하게 사라져 버리려고 하는 것 같아 보였어요. 불안했어요. 그래서 당신에게 나의 존재를 어떻게든 알리고 싶었어요.”


 는개는 마동의 눈을 2초 동안 힐난조로 바라보았다. 곧 입술 옆에 보조개를 만들었다. 마동은 는개의 손을 꼭 잡았다. 는개의 손으로 마동은 마음의 사과를 했다. 알아보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진심이야,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었어. 작고 아름다운 는개의 손을 다시 꼭 쥐었다. 조금만 힘을 주면 없어져버릴 것 같은 손이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알고 있었어요, 당신을 그동안 옆에서 많이 지켜봤어요, 당신은 진심이라는 것을요, 는개의 보조개는 전보다 조금 깊어졌다.


 “그런데 당신은 사람들과 달리 좀 기이한 구석이 있어요.”


 마동은 전의를 파악하기 전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긴 몰라도 마동은 타인과는 좀 달랐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는 확고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왜 예전에 회사에서 세미나를 갔다 온 후 말이에요. 사람들은 지금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어요. 그런데 전 잊지 않았거든요. 당신을 제외하고 당신과 함께 올라온 조원들은 전부 조금씩…… 뭐랄까, 망가졌어요. 누구는 회사를 관두기도 했구요. 우리 회사…… 관두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요. 떠올리면 뱀의 무늬처럼 복잡하게 얽힌 사건이 숨어있다고 생각이 들지만 시간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그 일을 자연스럽게 잊어갔어요. 그렇게 모두가 하나같이 약속이나 한 듯 잊어버리는 일이 가능할까요? 부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당신이 어린 학생 때 나에게 다가왔던 것처럼 말이에요.”


 “전 당신의 머리 주위에서 우로보로스의 띠를 보았어요. 그것은 나의 착각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당신을 보았고 당신의 이름을 봤어요.”


 마동은 꼼짝하지 않았다. 갑자기 이스터 석상의 턱을 가진 주차요원이 떠올랐다. 그 사람의 무표정한 얼굴과 사람들과는 섞이지 못하는 이질적인 모습으로 그가 직업에 임하는 모습이 생각났다. 왜 갑자기 이스터 석상의 턱이 생각났는지 마동 자신도 궁금했다. 내일 해가 떠오르고 나면 이스터 석상의 턱은 버스를 타고 회사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일자리가 있는 도로가로 가서 시커멓게 된 얼굴을 하고 주차권을 끊고 사람이 차에 오르면 바로 자신의 계산법으로 요금을 계산해주고 동전을 받을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인생인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주어진 무엇인가를 묵묵하고 정확하게 해낸다는 것. 그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인간이 매일 경쟁을 한다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그 인생이 삶이다. 삶이란 그런 인생을 찾아가는 길이다. 그렇기에 생활은 힘들고 지칠지 모르나 삶은 아름답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2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