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Jan 01.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22

11장 4일째 저녁

322.


 “이 세계를 자신들의 놀이터로 보는 그 놈들을 당시에는 전부 집어넣고 싶었어요. 그리고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법학을 공부한다면 당신을 찾는 것에 좀 더 명확하게 다가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시절 전 지금의 모습에 가까워졌어요. 거기 증명사진의 모습처럼 말이죠. 고등학교 3학년의 모습에서 말이죠. 고등학교 3학년의 모습에서 지금은 변한 게 거의 없어요. 좀 더 나이를 먹고 화장으로 지금의 나이를 감추는 정도죠.”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당신을 찾았을까요? 그 남학생이 다가올 때 교복의 명찰 속 이름을 봤다고 했죠? 내 머리에 그 이름은 각인이 되어 떠나지 않았어요. 고. 마. 동. 그 이름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집을 떠나 대학교는 서울대학교로 갔죠.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할 수 있는 게 공부밖에 없었거든요. 공부가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쉬웠어요. 방학 때마다 잊지 않고 동네의 골목에서 기약 없이 그 남학생을 기다렸어요.”


 는개는 말을 하며 마동의 손을 꼭 쥐었다. 는개의 미약한 마음이 마동에게 손을 타고 전해졌다.


 “바로 당신을 찾으려고 했어요. 알음알음 심부름센터에 도움을 청하기도 했어요. 굉장한 심부름센터도 찾아가서 당신을 찾는 것에 많은 돈을 지불했어요.”


 는개는 나머지 한 손으로 와인을 마셨다. 와인이 는개의 가냘픈 목으로 넘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는개의 눈빛이 애절하게 빛났다.


 “그동안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요? 만나면 물어보고 싶었어요.”


 는개의 눈은 촉촉해져 있었다. 잠시의 틈이 마동과 는개의 중간에 줄다리기의 줄처럼 놓였다. 와인을 각각 한 모금씩 또 마셨다. 마시는 와인이 무슨 맛을 지니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마동이 알 수 있는 것은 는개가 자신 앞에 있다는 것이고 그 사실이 감사하는 것이다.


 “전 사법고시를 패스했어요. 어렵지 않았어요. 막힘이 없었죠. 법무연수원에서 연수받을 때에도 성적이 좋았어요. 그런데 졸업과 동시에 법원과 경시청에 돌입을 앞두고 당신 회사의 채용정보를 인터넷으로 보게 되었어요. 지금의 우리 회사는 병아리 감별사를 양성해내는 집단이라고 할 만큼 창의적이고 새로운 일이잖아요. 많은 졸업생들이 상장이 되어 버린 꿈의 리모델링 회사에 관심을 가졌고 입사원서를 내고 있어요. 경쟁이 치열해요. 전 나만의 미래가 있었기에 우리 회사에 입사원서를 넣을 생각이 전혀 없었죠. 그러던 중 우연히 친구가 컴퓨터를 통해서 회사의 홈페이지에 접속을 하고 있어서 친구의 뒤에서 화면을 보게 되었어요. 회사의 홈페이지에는 대표의 사진과 이름이 있고 회사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사진과 이름이 있는 페이지에서 당신을 봤어요. 친구가 마우스로 페이지를 넘기려고 할 때 저는 친구를 막았어요. 당신의 사진과 이름을 보는 순간 전 그대로 얼어버리는 것 같았죠. 이름은 내가 그렇게 찾던 이름이었거든요. 이름 위의 사진 속에 당신은 그때 그 남학생의 모습이었어요. 맞았어요. 분명 그 남학생이 조금 커버린 얼굴을 하고 있었죠. 전 내 앞의 미래를 모두 포기하고 회사에 입사원서를 넣을 거예요. 그리고 입사해서 당신과 만나게 되었죠.”


 마동은 는개의 이야기를 듣고 꼼짝하지 않았다. 움직이기도 싫었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녀의 말이 끊어지니 이전보다 더 짙은 침묵이 두 사람의 주위에 감돌았다. 맨하탄스의 노래도 들리지 않았고 여름밤을 시끄럽게 만드는 아파트 밑의 취객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베란다 밖의 저 먼 하늘에서는 마른번개가 치고 있었다. 빛의 섬광이 시야에 잠깐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마동은 는개의 이야기에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침묵은 날카로운 정감으로 마동의 볼을 스쳤고 순간 마동은 는개를 바라보았다. 는개는 마동과는 다르게 침묵의 질을 침착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는개는 마동의 말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야기를 끝내고 몰려온 침묵을 단지 와인 잔에 잘 담아 놓으려는 듯 와인 잔을 아주 천천히 돌렸다. 와인 잔 속의 색체가 엷은 와인은 침묵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와인 잔속에서 집적된 작은 침묵에 있었고 는개의 손목에 따라 천천히 아주 느린 와인의 흐름에 따라 침묵은 흔들리고 있었다. 마동과 는개는 동시에 그 모습을 심도 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호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