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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31.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21

11장 4일째 저녁

321.


 “남학생은 눈물을 흘리면서 나에게 왔어요. 눈물을 흘리는 남학생은 당신이었어요. 교복이 이름표에서 당신을 이름을 봤어요. 당신은 나에게 다가와서 책을 내밀었어요. 나는 당신에게 책을 건네받는 순간 앞이 하얗게 빛이 번지면서 정신을 잃었어요. 눈을 뜨니 병원이었고 나는 엄마에게 이야기를 해서 당신을 찾으려고 했어요. 지금 내 눈앞의 당신을 말이에요. 하지만 어쩐 일인지 당신을 찾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어요. 그 학생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퇴원 후에도 매일 생각도 하기 싫은 그 골목 근처에서 남학생들이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한 시간씩 기다렸어요. 하지만 당신은 볼 수 없었어요. 나는 혼란스러웠어요. 당신을 정말 찾고 싶었거든요. 나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골목 근처를 매일 비슷한 시간에 남학생을 찾으려고 걸어 다녔어요. 책을 건네려 다가올 때 당신의 이름을 보았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찾았어요. 그런데 동네에서 그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어요. 왜 그렇게 찾아 헤매고 다녔는지 알 수 없어요. 남학생의 잔향은 내가 어디를 가나 따라다녔어요. 그림자처럼 말이에요. 어떤 날은 밤공기에 잔향이 나타나기도 했어요. 반드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남학생이 나에게 다가온 것은 숙명 같은 것이라 생각이 들었어요. 당신이 남긴 잔향은 내 속에서 날아오르지 못하는 새처럼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았어요. 당신이 흘리던 눈물이 떠올랐고 당신이 건네준 책을 받을 때 느꼈던 감정의 배회가 자꾸만 떠올랐어요.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고도 당신을 찾는 일은 지치지 않고 계속됐죠. 참 이상한 건 당신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기이한 일이었어요. 하긴 당신의 머리에서 보이던 그 빛의 띠부터 기이했어요. 남학생이 입었던 그 교복을 보고 그 학교를 찾아갔지만 역시 그 남학생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어요.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는 과연 누구였을까. 내가 헛것을 본 것일까.”


 는개는 숨을 쉬었다. 힘들어 보였다. 잡고 있던 작은 손이 조금 더 뜨거워졌다.


 “나는 그날 이후 병원에 입원을 하고 며칠 만에 깨어났고 뉴스에서는 사채업자 네 명의 실종이 보도되었어요. 그들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전혀 없었고 경찰들이 집으로 와서 엄마에게 새아빠의 행방을 묻기도 했지만 엄마 역시 넋 나간 사람 같았어요. 엄마는 방 안에서 머리부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 새아빠의 모습을 본 것이죠. 그날 직장에 일을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새아빠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눈앞에서 봐야 했어요. 엄마는 그 사실을 경찰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어요. 경찰이라는 사람들은 사실만 믿는데 엄마의 말은 그들 입장에서 터무니없는 허구의 상상 같은 것이니까요. 엄마는 그 광경이 충격이었던 모양이에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에 대한 어떤 보상을 어디에서도 받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엄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몸의 여러 부분이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 시절도 지나갔어요. 그를, 그 남학생을 그러니까 당신을 찾고 싶었는데…….” 는개는 작은 새가 숨을 쉬듯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부드러운 는개의 손은 마동의 손 밑에 있었다. 는개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는개의 손도 따뜻했지만 냉철했다. 마치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손을 잡는 느낌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 마동은 또 한 번 흠칫했다.


 그때 는개가 마동의 손을 잡아 주었다. 사랑스러운 손이었다. 사랑스러운 손이라고 다 같을 수는 없다. 확실한 것은 는개의 손은 사랑스럽다는 것이다.


 “내 고등학교의 생활은 학교에서의 수업을 제외하면 나머지 시간은 당신을 찾는데 시간을 보냈어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엄마는 우리가 살던 집을 팔면서 그 동네를 떠났지만 나는 그 골목을 하루에 한 번은 가서 그곳에 머물러 있었어요. 남학생이 혹시나 오지 않을까 하며 기다렸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대학 진학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했어요. 법률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성범죄 내지는 성(性)적으로 학대를 당하는 여자들을 위해서, 수치심을 가지게 만드는 남자들을 응징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어요. 차별이라는 말을 차이라는 말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이란 나의 말을 누군가 들어주기를 바라고 내가 내민 손을 잡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데 그 손을 잡아주고 싶었어요.”


 는개는 틈을 두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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