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호빵
호빵이라는 건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의 과거 같은 느낌이다. 시간이라는 게 꼭 옛날 극장에서 하는 영화 사이의 예고편의 필름처럼 촤르르하는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과거로 걸어가는 순간 필름은 거기서 잠시 멈춘다. 손을 쭉 뻗어 필름을 뒤로 돌리면 사람이 거꾸로 걸어가고 물이 위로 솟아오른다. 술을 잔뜩 마시고 머릿속을 찰랑거리는 공백으로 만든다. 그러고 나면 과거에서 후후 불어가며 먹었던 호빵이 도사리고 있다. 마당은 새로 산 도화지처럼 하얀색으로 마를 대로 말라 차갑고 딱딱하다. 해는 며칠째 나지 않아 잿빛 하늘이 실패한 얼굴을 하고 있고 바람도 없다.
겨울인데 겨울과 겨울 사이의 푹 꺼진 계절처럼 느껴진다. 오분마다 공간의 밀도가 달라진다. 부풀었다 팽창했다, 구에 가까워졌다가 평행해졌다가, 바지가 커졌고 겨울 장갑이 촌스러워졌다. 장갑은 장갑으로 마땅한 책임을 다했다. 그저 손의 보온에만 그 기능을 다 할 뿐이었다. 손으로 쥐고 말아야 여타 모든 기능은 그 밖의 일들로 치부해버린다. 록키가 되어 그를 따라 해 본다. 올바르고 정의감에 불탔던 이탈리아 종마 록키 발보아. 공간의 높은 밀도 때문에 금방 지치고 만다. 장갑을 뺐더니 손바닥에 땀이 물처럼 고여있다.
공허했던 속을 채워준 건 호빵일지도 모른다. 겉은 하얗고 속은 검은, 겉과 속은 다르지만 그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라고 하는 말을 듣고 우리는 호빵을 호호 불어가며 먹었을지도 모른다. 호빵이라는 세계는 두 개로 나누어진다. 호빵을 먹는 행위와 호빵의 맛으로.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일반적인 곳에서는 먹는 행위로 인해 맛이라는 게 따라오지만 과거로 들어가면 별개의 것으로 존재하고 만다. 행위는 그대로 둔 채 맛이라는 것이 먼저 입안으로 들어와 버리는 기분이 든다.
손에 들고 있는 호빵은 과연 무엇인가. 호빵을 반으로 갈라 보지만, 호빵은 반으로 갈렸지만 갈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갈라진 호빵은 호빵을 반으로 가른 행동만이 거기에 있을 뿐 맛도 그리고 원래 그러했던 것처럼 또 하나의 객체(object)가 되어 있어서 호빵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가르고 갈라도 호빵은 그대로다. 호빵에서 우리는 떠나고 만다. 아직 찰랑거리는 술이 머리의 공백을 채우고 있으니 현재의 호빵을 갈라 본다. 호빵의 겉과 속은 같다. 새하얗고 또 희다. 혹독한 겨울일수록 호빵은 호빵다워야 한다. 촌스러움을 간직한 채 시간을 멈추고 호빵을 후후 불어 먹고 싶지만 조카는 이미 커 버려 앤 마리의 음악에 심취해있고 심해 상어는 꼬리를 나부끼며 저 멀리 가버렸다.
가난해서 호빵이 더 맛있었을지도 모른다. 가난이라는 건 부끄럽지는 않지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재미로 반으로 갈아야 만 하는 지금의 호빵은 찰랑거리는 머리의 공백을 요만큼 매워준다. 그래서 호빵은 참 기이한 음식이다. 혹독한 겨우내 멋지게 옆에 있다가 멋진 봄이 오면 저 멀리 혹독하게 가버리고 만다. 그렇지만 지금은 호빵을 먹을 수 있다. 아직 하루는 상처 받지 않았고, 손상받지 않은 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