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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an 04.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25

11장 4일째 저녁

325.


 “실은 앞으로 곧 이곳이, 이 세계가 그렇게 깜깜한 암흑의 세상이 될 거야. 나는 알고 있어. 눈을 감으면 이곳이 암흑의 천지로 변하는 모습이 보여. 나 말이야 사실은 무서워. 는개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정말 무섭다구.”


 마동이 이야기를 중단하니 방금 전과 다른 침묵이 거실 벽과 공간에 존재했다. 침묵은 으레 손을 귀에 대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듯했다. 침묵의 옆에는 고요가 혼재했고 그들을 방해하는 소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맨하탄스의 노래는 끊어졌다. 들리지 않았다. 도마 접시 위의 횟감도 와인 잔도 와인 병도 테이블도 의자도 전혀 소리라는 것이 없었다. 아파트라는 거대한 공간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소리를 침묵과 고요가 잡아먹었다.


 “고등학교의 어느 날 나는 골목에서 사고를 당했다고 들었어. 그리고 병원에서 옮겨졌고 깨어났을 때 기억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었어. 내 기억의 범위가 이만큼이면(여기서 여기 까지라며 한 손으로만 표시를 했다. 한 손은 는개의 손을 잡고 있었다) 어느 부분을 칼로 잘라 놓은 케이크처럼 단면적이야. 사라진 기억의 면이 매끌매끌하고 차가워. 손끝으로 만지면 손에 상처가 날 것 같아서 함부로 다가가지도 못해.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왜 그 먼 곳의 마을까지 갔는지, 그 골목길을 찾아갔는지 모호하기만 해. 그 사실을 지금 는개에게 처음 들었어.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나를 그 골목에서 데리고 왔다는 사람이 없었어. 그저 어딘가에서 실려 왔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의사도 어머니도 그 누구도 나에게 이야기를 제대로 해주는 사람이 없었어. 다른 사람들처럼 기억이 흐르는 물 같지 않아. 그저 끊어진 액체처럼 단면적일 뿐이야. 공허하게 비어있는 부분이 눈에 보인다고.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누군가에게 맞은 것처럼 몸에 멍이 들어 있었고 얼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어있었어.”


 틈을 두었다.


 “가끔 꿈속에서 나타나는 환영 같은 모습 속에 내 옆의 그녀가 누구인지 병원 복도를 내 손을 잡고 걸어준 사람이 누구인지 어째서 같은 꿈을 몇 년 동안 계속 꾸고 있는지 나도 알 수가 없어. 뇌의 단층 촬영을 해도 나타나지 않았어. 심리학자나 꿈 학자를 찾아갔지만 해답을 시원하게 얻을 수는 없더군. 나는 결국 오너에게 부탁하여 내 뇌파를 좀 알아봐 달라고 했어.”


 “사장님이 해 줬어요?”


 “당연하지만 안 된다고 하더군. 오너는 안 되는 일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어. 잘못 건드리면 돌이킬 수 없다고 말이야. 단순히 알고리즘에 의해서 위험을 감수하면서 멀쩡한 뇌파를 채집할 수는 없다고 하더군. 우리는 하나의 정확한 목적을 가지고 뇌파를 채집한다.” 마동은 손가락으로 ‘일’ 자를 만들었다.


 “사장님의 말이군요.”


 마동은 빙고,라고 입모양을 만들었다.


 “나는 단면적인 내 기억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어. 하지만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마음은 나에게 잠시 유보시켜두는 거라고 말했어. 언젠가는 기억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지. 나는 늘 답답했어. 속이 거북한 사람처럼 가슴 한편이 갑갑한 채로 살아오고 있었어. 그런데 이젠 기억을 찾을 필요가 없게 되었어.”


 마동은 는개의 사진들을 하나씩 쳐다보았다.


 “저도 변이하고 있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 변이 하니까”라고 마동은 조용히 말했다. 는개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입술 옆에 작은 보조개가 꽃을 피웠다. 초승달 같은 미소였다. 과장이 없는 달 같은 미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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