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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an 06.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27

11장 4일째 저녁

327.


 사진은 영원한 것 같지만 사진 속의 과거가 살아있을지라도 실재가 사라지고 나면 사진도 더 이상 영원하지 않았다.


 “당신 증명사진은 어때요? 언제 찍었어요?”


 는개의 말에 마동은 생각했다.


 나는 증명사진을 언제 찍었더라?


 회사에 입사할 때에도 마동은 증명사진을 제출하지 않았다. 입사원서는 인터넷으로 보냈고 첨부파일로 사진이 붙어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사진이 필요할 때에는 사내 디지털카메라로 찍어서 USB로 연결해서 사용하면 되었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에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면서 증명사진을 한 번 찍었을 뿐이었다. 지금 마동의 지갑 속 운전면허증에 붙어있는 사진이 증명사진의 마지막이었다.


 “글쎄, 아주 오래전에 한번 찍었는데.”


 “당신의 사진도 보고 싶은데 그냥 참을게요.”


 는개는 마동에게 와인 병의 주둥이를 내밀었다. 그녀가 부어준 와인은 병원의 주스처럼 목으로 잘 넘어갔다. 영문은 알 수 없었다. 마동이 집중을 해봐도 그녀의 의식에 접근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생각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보통 인간의 모습일까.


 혈류를 타고 흐르는 혈액의 흐름도 보통 때와 비슷하고 심장의 박동 수도 여느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마동은 는개와 네 번째 비 청아한 쨍그랑 소리를 냈다.


 “당신의 주방에서 독특한 부분을 발견했어요”라며 그녀가 말했다. 는개는 젓가락으로 회를 집어서 입안에 넣었다. 그녀는 배가 고프다고 하더니 음식은 조금씩 천천히 먹었다.


 “주방의 선반 안에 땅콩버터의 빈병이 어째서 많은 거죠? 당신, 땅콩버터를 좋아하는군요.” 는개는 주방 선반 쪽을 보았다.


 “땅콩버터를 썩 좋아하는 것은 아니야, 한국에서 먹는 음식에서 벗어난 색다른 맛이라 아주 가끔씩 사놓기는 했는데 오랜 시간 동안 하나씩 병이 늘어나 버렸어.” 마동은 많이 빨아서 퇴색된 운동화 같은 얼굴을 하고 선반을 쳐다보았다.


 “왜 버리지 않는 거죠? 빈병을…….”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 계기라고 한다면 이거였어.” 마동은 방의 책상에서 노트북을 들고 와서 화면을 터치해서 하나의 영상을 틀었다. 영상은 흑백이고 오래된 느낌의 영화였고 영화는 듀공 수프의 맛을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는개는 첫 장면을 보자마자 “'천국보다 낯선' 이군요”라며 단번에 알아봤다.


 “에바가 참 예쁘죠? 헝가리 여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예쁜 거 같아요. 저렇게 옷을 입었는데도 예쁘고 담배를 막 피워도 대는데도 예뻐요. 자다가 일어나서 씻지 않아도 예뻐요. 전 ‘천국보다 낯선’을 보면서 에바의 예쁨에 반했어요. 어째서일까요?”


 “영화니까.”


 마동의 대답에 그녀는 또 웃었다. 는개는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은 다음부터 웃음이 더 많아졌다. 크게 웃으니 치아가 피아노 건반처럼 고르게 아름다웠다. 웃음소리는 듣기 좋게 크게 나왔고 큰 소리의 웃음만큼 마동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그녀와 와인 잔을 부딪쳤다.


 청아하지 않는 몇 번째 소리일까.


 지금까지는 몇 번째인지 셀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 몇 번째인지도 모를 와인 잔의 부딪힘이었다. 와인은 목을 타고 내려가 몸속 구석구석 퍼졌다. 혈관을 타고 손톱 끝과 말피기소체까지 흘러들어 갔다. 와인은 더더욱 깊이 흘러 들어가 마동의 마음속 천국보다 낯선 그곳까지 들어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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