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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an 07.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28

11장 4일째 저녁

328.


 “짐 자무쉬는 에바를 예쁘게 보이고 싶게 하고 싶었을 거야. 유일하잖아. 따지고 보면 그의 영화에 나오는 여배우들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잖아. ‘커피와 담배’에서도 쌍둥이로 나온 케이트 블란쳇도 그렇고 인생에 단 몇 분 정도가 영화 인생의 전부인 ‘르네’도 그렇고 말이야.”


 는개는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주 잠시 동안이었다. 2, 3초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녀가 무표정으로 생각에 빠져있는 2, 3초 동안 작은 행성이 몇 만 광년을 훌쩍 뛰어넘어 버린 세계가 그녀의 눈동자 속에 있었다.


 “생각이 났어요. 에디가 여행 중에 빈 땅콩 병을 들고 다니잖아요.”


 “맞았어.”


 “에디를 보고 선반 위에 저렇게 땅콩 병을 모아 둔 거예요?”


 “부분적으로는.”


 “알 수 없어”라고 하고서는 조용하게, 귀여운 사람이라고 했다. 묘한 눈빛을 띠고 는개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했다. 는개의 미소를 볼 때마다 마동의 불안감은 조각이 되어 의식을 짓눌렀다. 두 사람의 잔이 부딪혔다. 그녀는 배가 고픈 사람치곤 많이 먹지 않았고 그 빈속에 와인이 들어가서 그런지 얼굴의 양쪽 볼이 붉게 물들었다.


 “부분적으로는 에디의 영향이 있었지만 땅콩 병을 씻어 놓으니까 마치 새로운 하나의 물품을 보는 것 같았어. 다른 빈 병보다 좋아 보였어. 땅콩 병에 붙어있는 라벨도 마음에 들었고 말이야. 언젠가는 버려질 빈병인데 저렇게 모아놓고 보니 텅 빈 선반을 멋지게 채워주고 있잖아. 저 빈 병 속에 무엇을 채워 놓으면 그 속에서 땅콩의 맛이 나지 않을까. 좀 더 맛있을 거야. 물을 부어 놓는다고 해도 더 맛있는 물을 맛볼 수 있을 거야. 하는 마음이 들었어”라고 마동은 말했다.


 잠시 침묵.


 “하지만 거기까지였어. 저 빈병에 무엇을 넣어서 먹어본 적은 없었어. 분명 실망할 테니까. 그렇게 하나씩 오랜 시간 동안 모이기 시작한 거라구.”


 그녀는 마동의 이야기를, 동화를 듣는 아이처럼 흥미 있게 들었다. 는개는 마동이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카스텔라를 처음 맛본 사람처럼 신기하기만 했다. 그 점은 마동도 마찬가지였다.


 “대학교 시절 교양과목으로 사진영상학을 들었어요. 교수님이 짐 자무쉬의 팬이었어요. 클래스에서 단체로 영사기를 돌려 ‘천국보다 낯선’을 봤어요. 지금보다 생각이 복잡했고 질문이 많았을 때 이 영화를 접했어요. 당시에도 시간이 나면 전 당신을 찾는 일에 시간을 보냈거든요. 공허했어요. 무척 공허했어요. 그 공허함은 내 의식을 몽땅 분열시켜 버릴 듯했어요. 사람이 이렇게 공허함을 잔뜩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놀랐어요. 감정이란 상승을 했다가 끝도 보이지 않는 바닥으로 계속 꺼져가는 것이었어요. 영화를 보고 드는 감상평을 적어내라고 해서 영화를 통해 드러난 내 마음의 공허함에 대해서 적어냈는데 교수님이 방으로 조용히 불러서 정신과 상담을 권유해주시기도 했어요.” 는개는 수줍게 웃었다.


 그녀는 아이스크림 집의 가짓수처럼 31가지의 웃음을 지니고 있었다. 는개는 더 이상 마동에게 잔을 권하지 않았다. 고요하게 움직여 조용하게 혼자서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그녀는 마동에게 회를 먹여달라고 손짓을 보냈다. 마동은 젓가락으로 접시 위의 쥐돔 회를 집어서 간장에 살짝 찍어서 그녀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녀는 진정 행복한 모습으로 받아먹었다. 눈초리가 밑으로 한없이 떨어져 눈썹달을 만들어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천국보다 낯선’ 속에는 공허함이 가득했다. 영화 속의 에바는 영화가 던지는 모습과는 다르게 예뻤다. 애써 의상과 분위기로 가리고 있었다. 천국이란 결국 존재하지 않는 무형의 공간일지도 몰랐고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쫓아서 살아가는 게 인간의 삶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빅 피시의 에드워드처럼 되지는 못 한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 그런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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