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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an 08.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29

11장 4일째 저녁

329.


 마동은 는개와 와인 두 병을 비우고 서로 회를 조금씩 먹었다. 그녀는 냉장고의 문을 열고 그 속에 들어있는 소주 한 병을 꺼내서 선반 위에 있던 마동이 먹다 남은 와인을 들고 테이블로 왔다. 집에 남아있는 술로 그녀는 조금 특별한 술을 만들었다. 먹다 남은 와인과 소주를 섞었다. 그녀는 가스레인지에 물을 약간 끓이고 선반에서 오래된 꿀을 꺼냈다. 숟가락으로 딱딱하게 굳은 꿀을 저어서 몇 수저 떠서 끓는 물에 풀었다. 와인과 소주를 섞은 술에 끓인 꿀물을 넣고 얼음을 넣어서 저어주었다. 이름 없는 술이 만들어졌지만 맛이 꽤 좋았다. 그녀는 요술쟁이였다. 그런 제목의 영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은 나지 않았다.


 “술의 이름을 지었어요. 맞춰봐요.”


 “술에 이름이 있어?”


 “그럼요, 이름이 없는 것은 없어요. 모두가 이름이 있어요. 이름이 있는 것들은 모두 의미가 있어요. 호텔이 아늑한 이유도 이름이 있어서 그래요. 배가 멋진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그래서 택시가 엉망이군”라고 마동이 말했다.


 “맞아요. 빙고!”


 “자, 이제 이 술의 이름이 뭘까요?”


 “이 밤의 독주?”


 “그게 뭐예요(웃음)? 이건 독주가 아니에요. 꿀이 많이 들어가서 알코올 맛은 많이 나지 않아요. 하지만 바닥을 비워갈 때쯤에는 서서히 취하게 됩니다. 누구랑 닮은 거 같지 않아요?”


 는개의 말에 마동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이 술은 마. 동. 주.입니다.”


 “그게 뭐야.”


 노트북에서는 ‘천국보다 낯선’이 보는 이들이 없음에도 씩씩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에바는 월리가 사는 곳에서 떠났다. 는개의 몸도 술에 조금씩 잠식되어 가는 듯 그녀의 볼은 제철의 사과처럼 붉게 물들었다. 기분 좋은 수채물감으로 칠해 놓은 듯 보였다. 그 모습이 평소의 는개의 모습에서 벗어나서 마동은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는개가 놓치지 않았다.


 “저기 당신을 위해서 매운탕을 맛있게 끓이려고 했는데 와인을 많이 마셔서 안 되겠어요. 지금 상태로 끓이다가는 매운탕인지 잡탕인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내 경력에 오점을 남기긴 싫어요.” 는개는 붉게 물든 얼굴에 미소를 만들었다.


 웃는다. 예쁜 얼굴이다. 예쁜 얼굴의 그녀가 내 앞에 있다. 바로 코앞에. 믿기 어려운 현실이.


 는개가 입어서 크게 보이는 마동의 리바이스 티셔츠는 그녀의 옷처럼 보였다. 헐렁해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녀는 정말 여자 마술사처럼 마동의 옷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처럼 보이게 했다. 는개는 고개를 숙일 때마다 그녀의 가슴골이 드러났다. 그녀가 와인 잔을 식탁 위에 놓아두고 마동의 옆으로 왔다. 노트북 속의 월리와 에디가 카드로 딴 돈을 들고 클리블랜드로 무작정 떠났다. 에바를 만나기 위해. 계획 같은 건 없다. 그들에게는.


 는개가 가까이 올수록 그녀에게서 번지는 비누향이 마동의 내면에 가득 차 있던 쥐돔의 비린 냄새를 게워 내주었다. 마동은 는개가 다가올수록 두려움이 커져갔다. 다가오는 그녀를 뿌리치면 그녀가 상처 받을지도 모른다. 그녀 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어떤 변이를 보이게 될지 마동은 무서웠다. 무서움이 화장(火葬)된 형태로 마동에게 달려들었다. 마동과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다. 단순히 친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최원해처럼 그저 가까이에 있던 사람도 없어졌다. 어딘가에 숨거나 잠적하거나 물러난 것도 아니었다. 아직 최원해부장의 생사도 알지 못한다. 지금 그녀를 이 알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는개가 상체를 숙이고 마동에게 다가오니 티셔츠의 라인 안으로 그녀의 가슴이 드러났다. 그녀의 가슴골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떠올리게 하지 않았다. 오로지 앞에 있는 그녀에게 집중하게 만들었다. 마동은 땀이 나는 것 같았다. 고개를 조금 흔들었다. 그 모습에 는개가 마동의 볼을 감싸 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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