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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01. 2021

라면을 돼지국밥에 말아먹고 싶어서

음식 이야기

머릿속에서는 이렇게 해 먹으면 너무 맛있을 것 같아서 생각만으로도 침이 고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아무래도 허기로 인해 놔에 산소농도가 조금 떨어져 생각하는 것에 몸이 작용 반작용으로 즉각적으로 반응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배가 고프면 누군가는 화를 내고, 누군가는 짜증을 내고, 누군가는 말을 하지 않는다. 어떻든 배고픔은 인간에게 호러블 한 것이다.


국밥을 좋아하지만 자주 사 먹지 않아서 국밥이 당기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 다른 것으로 배를 채우면 이상하게 짜증이 나며 뭔가가 허전하다고 느낀다. 국밥집에 가면 뜨거울 때 바로 먹을 수 있고 밑반찬들은 계속 들고 와서(뷔페식이라) 먹으면 되니까 식당에서 먹는 게 훨씬 맛있다. 국수사리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그런데 국밥에 라면 사리를 넣어 먹고 싶었다. 아주 간절했다. 국밥 맛도 알고 라면 맛도 아니까 국밥에 라면 사리를 넣어서 먹으면 너무 맛있겠다. 어서어서 그렇게 해 먹자.


그 생각 하나로 일을 마치자마자 국밥집에서 국밥을 포장을 했다. 국밥집에는 국수사리가 있으나 (당연하지만) 라면 사리는 없다. 국밥 포장을 위해 집에는 뚝배기를 미리 사놨다. 국밥을 데우고 라면도 끓어서 씻지도 않고 라면사리를 국밥에 넣었다. 야심 차게 한 젓가락 떠서 입으로 넣었는데, 그랬는데 전혀 생각했던 맛이 아니었다. 맛이 없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어째서 그럴까. 국밥의 시원한 국물 맛도 희석되어 있고 라면사리는 그냥 따로 놀고 있었다. 잘 모르지만 기름에 튀긴 면사리는 국밥 국물에 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양념을 넣어서 먹으니 국밥의 맛도 가려지고 라면 맛도 사라졌다. 이야, 음식이라는 게 참 희한했다.


라면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

랄랄의 웃참을 보면 랄랄이 웃음을 있는 힘을 다해 참는 모습이 웃겨서 웃게 된다.  거기에서 본 사연인데, 직업 특성상 라면을 너무 많이 먹어서 큰일이다. 오늘도 먹어야 하는데.라는 글 밑에 댓글이 달렸다. 님은 직업이 뭐세요? 저는 백수입니다.


라면은 라면 다운 게 라면답다 라는 것을 알았다. 라면을 돼지국밥에 넣어서 먹고 나서 알게 되었다. 퓨전이 대세고 여러 가지가 공존하는 세상이지만 그만의 맛과 멋은 확실하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라면은 백수부터 직장인 그리고 학생, 직장인까지 누구나 좋아한다. 고속도로 여행 중에 휴게소에 들르면 다른 음식보다 라면에 공깃밥이 제일 맛있다. 7번 국도를 타고 강원도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한 휴게소는 바다가 다 보이는 곳에 앉아서 라면을 먹을 수 있다. 그곳에 앉아서 먹는 라면 맛이란. 


그런 것을 생각하면 집에서 먹는 라면 말고 밖에서도 라면을 많이 사 먹었을 때가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분식집이나 라면을 파는 식당에서 라면을 사 먹지 않게 되었다. 몇 해 전까지는 내가 일하는 곳 근처에 틈새라면이 있어서 계떡면을 왕왕 사 먹었다. 콩나물이 들어가서 시원하니 좋았다. 단무지도 맛있었고 밥을 말아먹으면 아무튼 든든했다. 하지만 다른 곳에는 틈새라면이 승승장구하는데 내가 있는 곳에서는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프렌차이점이 몇 군데 있었다. 케이에프씨도 견디지 못하고 나가고, 버거킹도 나갔다. 몇 달 전에는 오래도록 있던 본죽도 나가고 말았다.


라면을 끓일 때 계란을 풀어서 끓여 먹는데 라면에서 짠맛이 사라지고 난 뒤에는 계란을 풀어 먹으면 뭔가 라면이 라면 같지 않는 맛이 났다. 그러니까 좀 밍밍한 것이다. 라면을 저 위의 사연처럼 매일 먹을 게 아니니 라면 정도는 예전처럼 그대로 짠맛이 좀 나는 게 들판에서 막 자란 토마토 같은 느낌인데 지금의 라면은 화단에서 곱게 자란 도련님 토마토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계란을 라면과 같이 먹고 싶을 때는 계란 프라이를 해서 넣어서 먹는다.


라면에 짠맛이 줄어드니 물 조절을 조금만 실패하면 라면 맛이 없다. 그래서 매일 먹는 라면이 아니기에 라면을 먹을 때는 조미료를 좀 넣어서 끓여 먹는다. 그리고 센 불에 면과 스프를 동시에 넣고 끓여서 먹는다. 그러면 라면의 짭조름한 맛이 더 확 올라오면서 맛이 좋다. 외국에 수출하는 라면에는 옛날 그대로의 라면이 수출된다고 한다. 그래서 내수용보다는 해외에서 사 먹는 한국 라면이 더 맛있다고 한다. 향수도 불러일으키고 맛도 그렇고.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을 때 딴생각을 하다가 물을 약간만 더 부어도 라면은 싱거운 맛이 나는 것만 같다. 어떻든 평소에 짠맛을 즐기지 않고 오히려 국밥을 먹으러 가서도 새우젓은 넣지 않는다. 설렁탕도 소금 간을 하지 않고 설렁탕이나 곰탕의 그 밍밍하고 고소한 맛으로 먹는데 라면은 짠맛이 나야 맛있다.


그동안 사람들이 라면의 짠맛을 내는 MSG를 탓해서 라면 공장에서는 MSG를 빼버리고 대체 양념으로 스프를 만들었다. 어떻든 스프의 강한 짠맛이 훌러덩 빠진 것이다. 라면의 종류가 많아서 모든 라면은 모르겠지만 신라면과 삼양라면을 주로 먹는데 첨가물을 넣지 않고 라면만 온전하게 끓여 먹으면 옛날만큼 맛은 없다. 삼양라면은 어릴 때 왕왕 먹었고, 근래에(1년 전까지만 해도)도 주기적으로 끓여 먹었는데 여러 가지(김치 국물이나 고춧가루나 식초나 조미료나)를 넣어서 먹었다.


그러니까 마치 전장에서 이기긴 했지만 전투 후유증으로 전투원들의 3분의 2를 잃어버린 장군의 힘없는 모습 같다. 하지만 도망갔던 예전의 라면 맛을 찾아올 수 있으니 좀 귀찮아도 그렇게 해서 끓여 먹으면 또 입에 맞는 맛있는 라면을 맛볼 수 있다. 최근에는 사리곰탕면을 끓여 먹을 때 맛있게 맛있게 먹는 법을 알았다. 마트에 파는 일회용 곰탕국물로 라면을 끓여서 먹으니까 좀 더 맛있다. 거기에 후추를 쏠쏠 뿌리고 고추를 썰어 넣어서 같이 끓여 먹으면 맛있는 사리곰탕면이 된다.


한 번은 이렇게 밥과 두부를 같이 넣어서 끓였다. 끓이기 전에 봉지를 뜯지 않은 채 면을 잘게 부순다. 그리고 곰탕국물을 끓이고 거기에 사리곰탕면과 밥을 같이 넣어서 끓여서 먹으면 된다. 두부를 매일 먹는데 두부는 식은 채로 먹는 것도 고소한 맛이 많이 나면서 맛있지만 뜨겁게 먹으면 더 맛있다. 요즘은 여기저기서 뜨겁게 먹지 마라, 차갑게 먹지 마라, 같은 말이 많은데 가끔은 괜찮은 것 같다. 역시 두부는 뜨겁게 먹으니까, 후후 불어 아아 소리를 내며 먹으면 더 맛있다. 땡초 때문에 칼칼한 맛이 있으니 꽤나 맛있는 라면이 된다.



라면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라춘쇠라고 들어 봤는지. 라춘쇠 덕분에 어쩌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라면을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전 삼양라면을 보면 ‘2005. 10.3까지다’라는 반말로 라면 봉지 겉면에 당당하게 유통기한 날짜가 인쇄되어 있고 그 밑에 라춘쇠라는 글자도 있는데 사람들은 그게 이름인지 잘 몰랐다. 라춘쇠는 이름이다. 라춘쇠 이전에는 유통기한이라는 걸 사람들은 몰랐다. 그것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이후 모든 스낵이나 과자의 봉지 겉면에도 유통기한이 쓰이게 되었다.


라면은 모두가 잘 알겠지만 삼양의 창업주 전중윤 회장이 만들어 냈다. 전쟁 후 꿀꿀이죽을 사람들이 먹었는데 그걸 먹다 보면 그 안에 씹던 껌도 나오고 비닐 쪼가리도 나오고 사과 껍질도 나오고 엉망이었다. 남대문 시장에서 그 모습에 마음 아팠던 전중윤 회장이 삼양라면을 만들어 낸다.


당시에는 라면이 나왔을 때 사람들의 의식 속 국수는 이렇게 해서 이렇게 삶아 먹는, 절차가 있는 면식이었는데 라면은 끓는 물에 넣고 그냥 스프만 넣고 같이 끓이면 된다고 해서 대부분이 믿지 않았다.


그때 삼양 공장에 박정희와 박근혜도 와서 시찰을 하고 시식도 했다. 김종필도 일본에 여러 번 가봤지만 삼양라면의 맛은 처음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날 밤 전중윤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한 박정희는 술을 마시는 어른들도 먹을 수 있게 고춧가루를 좀 넣으면 안 되겠냐고 해서 전중윤은 개발에 들어간다. 그리고 전방에서 고생하는 군인들을 위한 라면도 개발을 하기 시작하여 삼양 라면은 붐을 타게 된다.


그리고 (또) 그때 65년에 롯데 공업에서 라면을 만들려고 했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동생 신춘호였다. 하지만 신격호는 삼양은 이기지 못한다 절대 하지 마라, 라며 단호하게 끊었지만 신춘호는 롯데 공업의 첫 라면 왈순마를 내놓는다. 당시 라면 모델은 강부자. 롯데 공업은 후에 농심 라면을 내놓고 농심으로 바뀌면서 강부자 역시 꾸준하게 모델을 하게 된다.


당시에는 롯데 공업의 왈순마는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롯데 과자에서 나오는 별사탕이나 과자를 라면에 막 넣어줬다. 그러다 보니 왈순마가 서서히 알려졌다. 또 후에 삼양은 공업용 우지를 썼다는 법원 판결이 나면서 무너지고 농심이 우뚝 서게 된다. 더 후에 우지는 식용이 가능하니 인체에 무해다는 판결이 났지만 이미 삼양은 큰 타격을 받은 후였다.


75년에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는 롯데 공업의 소고기 라면이 나오면서 농심은 이제 명실상부한 라면으로는 독보적인 존재가 되는 계기가 되는데,,,,,,, 근데 라면 이야기는 왜 해도 해도 끝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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