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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15. 2021

낙지의 고통

일상 에세이

문어를 냠냠 먹다가



문어를 먹다가 오래전 기사에서 낙지의 고통에 관한 글을 읽게 되었다. 낙지는 고통을 모를까?라는 제목의 기사로 읽어보면 낙지는 사람과 닮았다는 부분이 있다. 척추동물과 연체동물은 약 5억 년 전에 같이 나타났는데 인간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행동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낙지의 실험을 전 세계에서 많이 한다고 한다. 죽 읽다 보면 유럽에서는 낙지를 실험할 때 꼭 마취를 하도록 연구 윤리 규정이 있다고 한다. 그에 따른 사람들의 댓글 반응도 가지각색이다.


우리나라 돌문어도 사람들이 하도 건져내니까 얕은 바다에서 살다가 점점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는데 문어는 바다의 수온이 달라지면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그때 알을 품고 있으면 새끼들이 배가 고플까 봐 문어는 자기 다리를 뜯어먹으며 새끼들에게 양분을 제공한다. 그래서 가끔 다리가 하나 없는 문어가 밥상에 오르기도 한다.


오래전에(2012년) 물고기의 고통에 대한 글을 한 번 적었던 적이 있었다. 애니메이션 ‘파닥파닥’을 보면 만화인데 물고기에 대한 고통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물고기는 고통을 느낄까? 궁금했다. 만약 물고기도 고통을 느낀다면 인간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도 고기처럼 생선도 줄이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실제 베지테리언들은 생선도 먹지 않는다.


고통을 인간의 몸으로 비유를 하자면, 우리 몸의 통감 세포가 고통을 인지하면 전기 신호가 발생한다. 이것이 척추를 죽 따라 대뇌 신피질로 가서 고통으로 인식되는 방식이다.


그 당시 신문을 검색해서, 어느 해인지는 모르겠으나 8월 22일 자 조선일보 A29면에 ‘물고기도 고통을 느낄까?‘라는 칼럼을 발견했다. 그 칼럼은 이렇게 시작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바람을 피우는 남편 때문에 속이 타 들어가는 생각 없는 시어머니는 싱싱한 회가 먹고 싶다고 채근한다. 동트지 않는 새벽 4시, 횟집에 들른 그녀 앞에 살점은 사라지고 뼈만 남은 채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보인다. 어젯밤 주방장이 손님들 앞에서 솜씨를 부렸는데, 아직도 죽지 않았다고 한다. 살아있으되 산 것이 아닌 삶. 그녀는 저 물고기가 자신과 같다고 생각한다.로 칼럼은 포문을 연다. 이 글은 드라마의 실제 장면으로 첫 촬영을 그렇게 했다. 며느리의 삶이 사실은 수족관에 갇혀, 살이 발린 고통 속에 살아가는 물고기 신세하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장면은 독일에서는 절대 내보낼 수 없는 장면이라고 한다. 독일에서는 물고기 역시 척추동물로 인정해서 비인간적인 학대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고 해서 물고기를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이거나 고통을 주는 행위는 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낚시꾼들이 들고일어났다고 한다. 물고기는 사람처럼 고통을 느끼는 대뇌 신피질이 없어서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는 연구 발표가 있었다. 그것을 연구한 연구진은 진통제가 물고기에게 듣지 않는 것도 사람처럼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독일의 과학자들은 달랐다. 독일 정부를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물고기나 새우, 게, 바닷가재 등 사람들이 즐기는 해산물은 모두 고통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를 잇따라 발표했다. 그해 초 영국 퀸스대 로버트 엘우드 교수 연구진은 ‘실험생물학 저널(세상에는 정말 우리가 모르는 잡지가 가득하다)‘에 ‘게와 새우 같은 갑각류도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게의 다리에 전선을 연결하고 두 동굴 중 한쪽에 들어갈 때만 전기 자극을 줬다. 그러자 전기 자극을 받았던 게는 동굴에 들어가는 횟수가 크게 줄었다. 심지어 전선이 달린 자기 다리를 잘라내고 도망가는 게도 있었다.


고통을 느낄 뿐 아니라 기억까지 한다는 말이다. 엘우드 교수는 갑각류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통념 때문에 다른 동물이라면 결코 허용되지 못할 끔찍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는 과거 백인들은 흑인 노예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학대를 했다고 했다.


그 드라마에서 초반 장면인, 뼈가 드러나서 수족관을 유영하는 물고기의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영상이었다. 위의 기사 ‘낙지의 고통’에서 알 수 있듯이 생명이 있는 것들은 대부분 고통을 감수하고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발버둥 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낙지나 오징어나 먹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티브이 요리 프로그램에서 살아있는 낙지를 뜨거운 물에 집어넣는 장면 하나는 빼먹어도 그 맛이라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생물을 있는 그대로 죽여서 먹어야 맛있다는 최면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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