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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17. 2021

라면

일상 에세이

파송송 라면에 소주 한 잔

라면은 언제 먹으면 가장 맛있을까. 바로 지금 끓여 먹으면 제일 맛있다. 나 배불러서 아무것도 못 먹어,라고 하는 사람도 일단 라면을 끓여 놓으면 달려든다. 아니 한 젓가락은 꼭 먹어본다. 그리고는 젓가락 질을 계속한다. 라면은 어떤 마법이 숨어 있다. 대하기 껄끄러운 사람과 비싼 고기를 먹는 것보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깔깔거리며 먹는 라면이 백배는 맛있다.


근래에는 라면을 끓이며, 라면을 먹을 때 빌리 아일리시 노래를 듣는다. 빌리 아일리시의 노래는 신비로워서 그런지 먹는 라면도 꽤 신비한 음식처럼 느껴진다. 따지고 보면 꼬불꼬불한 면발에서 한 없이 느껴지는 생명력이 몸에 힘을 불어넣어준다. 그래서 라면 한 그릇 끓여 먹고 나면 배도 부르고 든든하다. 신비한 음식이다.


예전에는 라면을 두 개는 기본으로 끓여서 밥도 말아서 먹고 국물까지 싹 먹었는데 언젠가부터 그렇게 되지 않는다. 짜파게티는 3개 정도는 끓여 먹었지만 이제는 국물이 없는 짜파게티마저 여의치 않다. 나이가 든 것이다. 위가 예전만큼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또 먹는 것에 대한 욕심이 어린 시절과는 다른 방향으로 간다.


요즘에는 불 마왕 라면이나 염라대왕 라면을 먹는 것이 유튜브에서 유행이다. 맵 부심이 있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도전하며 먹고 있다. 그들은 라면에 관한 것만큼은 전문가들이라 스프가 익어가는 냄새만 맡아도 베트남 고추를 썼다느니, 캅사이신이 어쩌고, 하는 말을 한다. 유튜브에서 매운 라면을 먹는 모습만 봐도 코 등에서 땀이 난다. 신기한 일이다.


어째서 다른 음식에 비해 라면 먹는 모습이 더 맛있게 보이는 것일까. 또 후루룩 소리를 크게 내며 먹는 일본 라면보다 일반적으로 집에서 끓여 먹는 라면을 먹는 모습이 왜 시선을 더 끄는 것일까.


라면이 다른 음식에 비해 가지는 장점이 많다. 어디서든 먹을 수 있고 들어가는 부재료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짜장면은 중국집에 가야 하지만 라면은 집에서도 쉽게 끓여 먹을 수 있다. 새벽에 깨서 냄비에 물만 올리고 끓여 먹을 수 있는 게 라면이다. 끓이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 또한 묘미다. 마치 게임 속 캐릭터와 흡사하다. 들어가는 여분의 재료에 따라 맛은 또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콩나물을 넣었을 때의 맛과 김치를 넣었을 때, 계란을 깨트려 넣었을 때와 그냥 넣었을 때가 다르다. 라면을 끓여서 면을 건져내놓고 국물에 다시 파와 계란을 풀어서 한 번 끓여서 라면 위에 부어놓으면 맛은 정말 상상하는 것 이상 맛있다. 분식집에는 늘 라면이 있고 편의점에서도 라면을 먹을 수 있다. 여기는 지방이라 한강에서 파는 끓여 먹는 라면이 없었는데 얼마 전부터는 이제 편의점에서 한강의 끓여 먹는 라면처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라면에 관한 추억은 꼭 하나씩 있다. 몇 해 전에 후배와 함께 순천으로 2박 3일로 여행을 갔었다. 후배는 한창 사진에 몰입해있을 때여서 어스름할 때 순천만을 담고 싶어 하기에 사진을 찍으러 갔다. 여행을 하기 전에 후배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나를 찾아와서 많은 시간 사진에 관해 이야기하고, 묻고, 답하고, 촬영을 하고 갔다. 그리고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여행을 하면서 둘 다 서로 여행을 같이 다닐 스타일은 못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후배는 봉고를 몰고 다니며 일을 하는데 그 안에 일에 필요한 장비들이 잔뜩 들어있다. 일을 마치고 봉고를 몰고 그대로 그 차를 몰고 둘이 여행길에 올랐다. 그 봉고차를 나는 운전을 할 수 없어서 2박 3일 내내 후배가 운전을 했는데 혼자서 계속 운전을 하니 힘이 들었다. 후배는 여행을 가기 전에 잠꼬대가 심하다고 하기에 그러려니 했는데 나는 침대 밑에서 자야 할 정도로 잠꼬대를 할 줄은 몰랐다. 소리를 지르는 것은 물론이고 주먹질을 하는 바람에 옆에서 잘 수는 없었다.


후배는 노가다를 해서인지 밥을 빨리 먹었다. 여행길에 올라 보통은 시켜 먹지 않는 음식점의 음식을 잔뜩 주문했는데 후배는 밥공기의 밥을 후딱 두 그릇 정도 먹고 나면 배부르다며 숟가락을 놓았다. 그러니 남은 음식이 너무 아까운 것이다. 둘째 날 저녁에는 오리백숙 집에서 백숙이 나오기 전에 그 집에서 전갱이 튀김 같은 것을 한 접시 주었는데 그걸로 밥과 술을 마시고는 백숙이 나오기 전에 그대로 식당(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의 바닥에 피곤하다며 누워서 잠이 들어 버렸다. 올 때는 부산을 거쳐서 왔는데 운전하느라 힘드니까 내가 운전을 하겠다고 해도 이 봉고는 자신밖에 운전을 하지 못한다며 하지 못하게 했다. 아무튼 둘 다 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랬던 우리 둘도 맞는 부분이 있었다. 둘째 날 오전 일찍 일어나서 순천의 여기저기를 돌다가 좀 외진 곳까지 가게 되었다. 배가 고프니까 식당을 찾았다. 식당을 찾았는데 외관이 너무 있어 보이는 식당이었고 주위에는 그 식당 밖에 없었다. 들어갔는데 메뉴판을 보니 입이 벌어질 정도로 비싼 곳이었다. 어차피 비싼 돈을 주고 주문을 해도 후배는 밥 한 두 공기 정도 먹고 나면 배불러서 숟가락을 놓을 텐데, 그리고 그 사실을 후배도 알고 있어서 밖으로 나오려고 했는데 묘하게 종업원이 우리에게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여하튼 두 명이서 밥 한 끼 먹는데 5만 원 정도인데 3만 원에 먹을 수 있는 메뉴를 내놓겠다는 것이다. 후배는 노가다를 하면서 꼭 식사시간을 지켜서 인지 배가 고픈 것을 참지 못했는데 후배가 우리는 돈이 없어서 안 되겠다며 그곳을 나오게 되었다. 다행이었다. 그리고 봉고를 몰고 좀 가니 시골의 슈퍼 같은 곳이 나왔다. 편의점은 아닌데 편의점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둘이서 컵라면을 먹었다. 컵라면에 물을 붓고 밖의 파라솔에 앉았다.


컵라면이 익어가는 3분 동안 여행 3일 중에 제일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다. 그리고 먹은 컵라면은 참 맛있었다. 그때도 2월이었는데  출발할 때는 날이 추웠지만 하루가 지난 순천은 따뜻했다. 그 슈퍼의 컵라면은 종류가 별로 없었다. 아마 둘 다 김치사발면을 먹은 것 같다. 하나로 모자라서 우리는 하나씩 더 먹었다. 라면은 늘 그렇듯이 맛있었다. 서로에게 지친 우리를 컵라면은 위로해 주었다. 컵라면을 먹는 동안에는 그곳에 앉아서 그 여행을 즐겼다. 비싼 음식을 먹으면서 느끼지 못했던 여행의 묘미를.


라면은 여행지에서 먹는 라면도 참 맛있다. 대천에서 회를 실컷 먹었어도 새벽에 새우를 넣고 끓인 라면 맛을 잊을 수 없고, 타지방에 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들른 휴게소에서 먹은 라면이 생각나기도 한다. 라면은 밥 때문에 홀대받기 일쑤였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밥보다 더 근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더 근사하기에 질투를 당하는 것이 라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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