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남자를 크게 이분법으로 나누면 문과형과 이과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루키도 자신은 문과형에 속하는 인간으로 말했다. 물론 사람들에게,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인기가 있는 남자는 이과형에 속하는 남자들이다. 남자는 예술적 기량이 철철 흘러넘쳐도 여자들이 기댈 수 있는 남자는 이과형 남자들이다. 노래를 아무리 잘 부르는 남자라도, 그림을 아무리 잘 그리는 남자라도,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이과형 남자가 필요할 때에 그것을 하지 못하면 뭐야? 남자가 그것도 하나 못해요? 흥.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제 아무리 글재주가 좋고, 고흐가 울고 갈 정도의 그림을 그리고, 들으면 눈물이 흐르는 노래를 불러도, 수도가 터졌을 때 뚝딱 고쳐버리고, 달리는 자동차가 이상이 있을 때 보닛을 열어 음, 여기가 문제군, 하며 보험 기사가 오기 전에 뚝딱 처리를 하고, 냉장고에 이상한 소리가 들릴 때 “이건 냉장고의 수평이 맞지 않아 나는 소리야” 같은 소리를 지껄이며 집 안에 있는 어떤 것들을 이용해서 지렛대로 사용해 냉장고의 수평을 맞추어 소리가 나지 않게 하는 남자들을 여자들은 좋아하게 되어 있다.
문과형에 속하는 남자들은 이과형이 속하는 남자들만큼 능숙하지 못하거나 상황 대처 능력이 부족하면 여지없이 아내나 애인이나 어머니에게서 흥, 남자가 그것도 하나 못 해! 같은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늘 생각한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는 전문가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필요할 때 전화를 하면 슈퍼맨처럼 나타나서 보통 그런 일들을 해결해준다.라는 말을 해봐야 그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나 같은 경우를 보자. 나는 사진을 하기 때문에 사진에 관한 것들에 대해서 다룬다. 그렇다고 해서 카메라에 관한 걸 다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진을 업으로 하기 때문에 카메라의 고장 유무나 카메라의 기기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내가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주위에서는 카메라 문제로 나에게 들고 왔다가 늘 허탕을 치고 간다. 가면서 어떤 사람은 꼭 이런 말을 남긴다. 아니 사진을 하면서 카메라에 대해서 모른단 말이야?
한 번은 일하는 건물 위층에 다단계 회사가 들어와서 몇 달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경우가 있었다. 그들은 행사가 많아서 늘 사진을 찍는 모양이다. 내가 일하는 사진관에서는 일반 사진은 출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가깝다는 이유로 늘 다른 사람이 내려와서 일반 사진을 출력해 달라고 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가기 일쑤다. 그래서 올라가서 여기는 일반 사진은 출력하지 않는다고 전해달라고 말했지만 묵살당했지 싶다. 그 이후에도 정장을 입은 다른 사람들이 내려와서 사진을 출력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다 사진을 출력할 것은 아닌데 단체사진을 찍으면 사진이 흐리게 나오는데 왜 그렇냐고 물었다. 사진을 보니까 초점을 전혀 맞추지 않고 찍어서 그렇다고 내가 말했다. 반셔터를 누르면 포커스를 맞춰 주니까 그렇게 찍으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려 열 번 넘게 같은 말을 하게 만들었다.
요즘은 뜸해졌지만 한 동안은 근처에서 카메라 서비스 센터나 수리점에서 해야 할 것들도 나에게 들고 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같은 닭을 취급하니 닭갈비 집에서 치킨을 내놔라 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사진관을 하면서 카메라도 고치는 사람들이 있을지는 모르나 사진과 카메라 자체는 별개의 문제다. 카메라의 영역 속에는 기기적인 부분이 많아서 이과형에 속한다. 하지만 사진의 영역은 문과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같은 카메라를 들고 같은 곳을 촬영해도 누가 찍느냐에 따라서 사진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문과형으로 말하자면 사진은 카메라보다 사람이 담는다.
나는 주로 선물을 줄 때 사진으로 무엇을 만들어서 주곤 한다. 어머니가 고마워하는 분들의 사진을 받아와서 뭔가를 만들어 주는데, 벽걸이 시계-원목으로 된 파이가 40센티미터가 넘는 시계에 사진으로 디자인을 해서 선물로 준다. 그러면 그 시계를 어머니를 통해서 시계 주인에게 가게 되는데 그때 감사의 인사를 받게 되어서 으쓱하지만 집 안에 이과형 남자가 필요한 일이 발생하면 -요컨대 느닷없이 티브이가 나오지 않게 되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남자가 그것도 하나 만지지 못하냐는 말이 어김없이 돌아온다. 옆집 아주머니의 돌아가신 부군의 사진을 마우스로 초상화를 그려 액자에 넣어 주면 그 고마움은 어머니가 듣게 되고 이과형 남자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한 소리를 듣게 된다.
프라모델을 만들고 디오라마를 일일이 디자인하고 출력하고 잘라서 붙이고 직접 칠하는 것은 잘하는데 전기나 기기적인 부분에서는 눈만 말똥말똥 뜨고 보고만 있다. 인간이란 참 제멋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