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수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Feb 13. 2021

조깅을 하다가 만나게 되는 까마귀 떼

일상 에세이

실내 조깅에서는 맛볼 수 없는 야외 조깅의 장단점은 변수에 있다는 것이다. 바람, 먼지, 불빛, 냄새 같은 것이 매일 다르다. 그리고 조깅코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역시 매일 다르다. 어? 뭐야? 왜 저렇게 달리지?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화 ‘차인표’에서 앞뒤로 박수를 치며 다니는 아주머니 같은 폼으로 달리는 사람도 있다.

매일 달리는 코스가 있는데 질릴 때가 있어서 일주일 중 평일은 늘 달리는 코스로 달리고 주말에는 반대로, 다른 쪽으로 달리기도 한다. 또 육 개월은 강북 쪽의 코스로 달리고 육 개월은 강남 쪽 코스로 달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이도 저도 질리게 되면 코스에 공원을 집어넣어서 공원을 몇 바퀴 돈다. 공원 안에는 오르막길도 있고 가파른 계단도 있어서 몇 바퀴 도는 동안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은 기분 좋은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요 며칠은 평소에 달리는 코스를 벗어나 강변의 다른 코스로 달려 상류 쪽으로 올랐다. 그곳에는 7만 마리나 되는 까마귀들이 서식한다. 까마귀들 뿐 아니라 철새까지 오는 여름에 서식지 근처를 달리면 새 냄새가 어마어마하게 난다. 새 냄새라는 건 닭똥냄새 같은 냄새를 말한다. 여름에 닭장 근처에서 나는 냄새의 백만 배에 달하는 냄새가 그 근처를 달리면 풍긴다. 한 마디로 지옥의 냄새다.

겨울에는 백로 같은 다른 철새는 거의 없고 까마귀들만 서식하는데 저녁 6시에서 8시경에는 하늘을 점처럼 뒤덮은 까마귀 떼의 절경을 볼 수 있다. 달리다 보면 저 먼 하늘에서 구름이 막 움직이는 게 보인다. 구름인데 빠르게 움직인다. 마치 영화 속 검은 엑토플라즘처럼. 달려서 가까이 가면 노이즈 같은 잡음이 세세세세세 하며 들리다가 나중에는 까악 까악 소리가 오케스트라처럼 들리는데 수만 마리가 하늘에서 비행을 하며 울어대는 소리가 몹시 기괴하다.

까마귀 떼는 비행하는 하늘의 구간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어느 지점을 넘어가지는 않는다. 수천 마리가 비행을 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는 건 경이롭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왜냐하면 어떤 존재라도 그 개체가 상상 이상이 되면 굉장한 무서움을 자아낸다. 그건 생명체의 크기와 무관하다.

예전에 군대 후임 중에 영해 촌에 사는 놈이 있었는데 말년휴가 때 자신의 집으로 놀러 오라고 해서 갔는데 높은 고지대에 살고 있어서 논농사는 할 수 없고 밭농사만 가능한 지역이었다. 버스가 하루에 한 대 다녔다. 후임이 오토바이를 타고 왔는데 나와 동기가 한 명 더 있어서 오토바이에 다 탈 수 없어서 동기를 태우고 요만큼 타고 가서 내리고, 또 돌아와서 나를 태우고 가서 저기까지 가고 해서 6시간이 걸려 집에 도착했다.

가는 도중에 후임이 오토바이에서 넘어져 무릎이 까졌는데 그 부위에 날파리들이 까맣게 달라붙었다. 무서울 법도 한데 피떡칠에 붙은 날파리들을 떼지도 않더라. 우여곡절 끝에 후임이 사는 동네에 도착했는데 정말 시간이 후퇴한 강촌 중에 강촌이었다. 동막골 같았다. 개울을 넘어서 가는데 하늘이 좀 어두운 것 같아서 고개를 들어 보니 잠자리 수천 마리가 개울 위에서 떠 있었는데 잠자리 날개가 움직이는 소리가 몹시 소름 돋았다. 잠자리 한 두 마리야 아무것도 아닌데 수백수천 마리가 공중에 떠 있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날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한 대 있는 버스를 타고 6시에 나왔다.

7만 마리의 까마귀 떼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조깅코스에서 혼자 봤다면 엄청난 두려움이 밀려왔을 것이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롯데월드를 잘 안 가듯이 상류에 위치한 까마귀와 철새 서식지가 있는 이곳에 여기 사는 사람들도 잘 오지 않는다. 달리는데 옆으로 고등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자니 가면서 “야야, X바 까마귀 떼 실화냐”라고 놀라면서 자전거를 타면서 지나갔다. 페달을 더 빨리 밟았다. 

조깅코스의 길에 까마귀 똥이 말라붙어 있는 걸로 조심해야 할 것은 떨어지는 까마귀의 똥이다. 새똥은 냄새가 심하다. 사실 똥은 다 심한 똥냄새가 난다. 사람이든, 개든, 뭐든 똥은 다 냄새가 심하다. 새똥 냄새도 지독하다. 새똥 냄새는 떨어졌을 때보다 시간이 지났을 때 더 심하게 나는 것 같다. 과학적으로 근거는 없다. 하지만 보통 보면 비둘기도, 까마귀도 떨어진 똥이 시간이 지나 냄새가 고약한 경우를 봤다.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 중에서 새는 위장이 일직선이다. 인간이나 소처럼 구불구불하지 않다. 그래서 새는 사람처럼 똥을 싸기 위해 멈춰서 그런 행위를 하지 않아도 된다. 새는 날아다니며 똥을 쌀 수 있게 진화했다.

그렇게 하려면 똥과 오줌이 나오는 배설구가 같아야 한다. 역시 그렇게 진화를 했다. 그리고 알이 나오는 구멍 역시 같다. 그래서 메추리 알에서 가끔 배설물이 말라 붙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이유 때문이다. 새는 먼 거리를 날아야 하는데 그 에너지가 엄청나다.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중력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폴짝 뛰면 인간은 고작 1초도 못 떠 있는다. 새는 자신의 무게를 공중으로 부유시켜 활공을 해야 하니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러려다 보니 똥을 누기 위해 잠시 내려앉아 쉬었다가 다시 에너지를 끌어모을 수가 없다.

아무튼 까마귀 떼가 하늘 위에서 까악 까악 하며 날아다니는데 신기하게도 아직까지 머리 위에 똥이 떨어진 적은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까마귀 똥을 맞기도 했다. 대부분 까마귀 떼에 압도당해서 떨어지는 똥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 같은 건 애당초 하지도 못한다. 까마귀 떼가 점처럼 하늘을 수놓는 모습은 마술처럼 하늘에 그림이 그려지는 모습처럼 보인다.

정말이지 다시 한번 드는 생각은 이 밑에 혼자 있다면 겁이 나서 재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리가 있어서 벗어나려면 전력질주를 해도 십 분 정도는 달려야 한다. 그러니 더 없는 공포다. 이 밑을 지나다니면서 늘 드는 생각은 잘 보이지는 않지만 까마귀 떼가 날아다니다가 몇 마리가 전선에 앉으면 우르르 다른 까마귀들이 전선에 내려앉는다. 까마귀를 실제로 보면 비둘기의 두세 배 정도 크기로 한 마리도 무겁다. 그런데 매일 저렇게 몇 백만 마리가 전선에 가득 앉으면 그 무게에 전선이 끊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늘 가질 수밖에 없다.

전선이 전봇대에서 전봇대로 이어지는 그런 전선이 아니다. 철탑에서 철탑으로 이어지는 두껍고 큰 전선이다. 물론 튼튼하겠지만 탁 끊어지는 순간 그 밑에 지나가는 사람의 몸통에 촤르륵 하며 스치고 지나가기만 해도 몸이 분리될 것만 같다. 마치 영화 피라냐에서 철사줄에 몸이 반동가리나는 것처럼 말이다. 참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이렇게 구경을 하면서 조깅을 하고 나면 두 시간 정도가 지나간다.


달리다 보면 저 멀리 움직이는 것들이 보인다
아주 미세하게 세세 세세 세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쯤이면 이제 까마귀 떼 밑으로 진입을 한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까마귀 떼가 내는 소리를 확실하게 들을 수 있다
까악까악하는 소리가 한데 뭉쳐져서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 한 소리가
까마귀 떼들은 도대체 매일 왜 저렇게 하늘을 날아다닐까
아무튼 똥을 조심
신기하게도 저기 불빛이 있는 곳으로는 가지 않음
이를 실제로 보면 경악과 장관의 그 경계
이렇게 전선에 가득 붙어 있다
팽팽해야 하는데 엄청난 굵기의 전선이 휘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심슨 가족 - 한국 여행 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