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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an 14.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35

11장 4일째 저녁

335.


 “사모님이 연락도 없이 들어오지 않는 남편 때문에 자신의 오빠에게 연락을 했나 봐요. 부장님 부인의 오빠가 형사인데 산에서 다른 건 하나도 찾지 못했는데 부장님의 운동화를 발견했나 봐요. 이상한 건 부장님의 모든 것이 완벽하게 사라졌는데 운동화만, 그것도 운동화 한 짝만 발견했다나 봐요. 부인은 남편이 당신을 만나서 조깅을 시작한다고 하면서 나갔다고 형사에게 말을 했데요. 형사는 당신에게 갔다가 허탕을 치고 일단 회사로 온 모양이에요. 형사는 사장님도 연락이 되지 않아 지금 걱정이라고 하더군요. 회사는 두 명이 출근을 하지 않아서 분위기가 어수선해요. 하지만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어요. 당신도 그것은 잘 알고 있죠?” 는개가 말했다. 마동은 사실 잘 알고 있지 못했다. 보고를 받은 바도 없고 회사에 연락을 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클라이언트의 작업은 그것대로 원활하게 진행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그러했다.


 “클라이언트의 중요한 작업 분량은 새벽에 당신이 사장님의 컴퓨터로 보내주어서 다행이라고 하더군요. 전혀 진척이 없을 것 같은 교통체증도 언젠가는 풀리듯이 이렇게 밤이 되니 모두들 퇴근을 하고 곳곳에서 사랑을 나누잖아요”라고 말하는 는개는 또 한 모금의 와인을 마셨다. 마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새벽에 자신이 작업을 한 기억은 없었다. 당연한 것 아닌가. 하고 생각을 했다. 조깅을 하고 들어와서 옥상으로 올라간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나는 언제 작업을 해서 오너에게 보내줬단 말인가. 오너에게 클라이언트의 꿈 리모델링 작업이 들어갔다면 그건 정확하게 내가 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내면에 존재해있는 어떤 무의식이 작업을 한 것이다. 언제 그런 일을 순식간에 한 것일까. 레이아웃을 정리하고 조각나 있는 꿈의 스크린을 하나로 그러모으는 작업을 하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그 짧은 시간에 작업을 해서 오너에게 보냈단 말인가. 대칭의 나와 비대칭의 내가 대립을 했고 내면 속의 또 다른 나의 변이 때문에 나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휴대전화에도 오너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는 없었다. 모르는 번호와 회사의 전화번호, 는개의 부재중 전화번호만 깜빡거렸었다. 나는 내 안에 내재하고 있는 자아가 몇 개인지 그 자아가 어떤 모습으로 변이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이젠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현실이다. 그레고르처럼 이것은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이제 가족에게 더 이상 오빠로서 아들로서의 그레고르가 아닌 것이다. 그레고르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지하고 점점 자아가 사라져 갔다. 어느 날 갑자기 갑충이로 변해버린 그레고르와 나 자신을 나란히 세워놓고 봐도 다를 건 없었다. 새로운 자아의 개체에 대한 발로가 어디서 나오는지 나는 전혀 종잡을 수 없었다. 형사가 내일이면 찾아올 것이다. 최원해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두려운 것은 최 부장이 어떻게 된 것에 분명히 내가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어머 비가 와요. 창밖을 보세요. 비가 창에 부딪혀요. 당신의 집에는 형광등이 없어서 좋아요. 형광등 불빛은 뭐랄까. 가열차게 어떤 작업을 요구하는 빛 같아요. 책이라도 반드시 봐야 할 것 같거든요. 이렇게 노란빛의 조도가 낮은 빛은 사람을 허물어뜨리는 빛 같아요. 잠이 와요. 저 좀 잘게요.”


 작은 하품을 하고서 는개는 마동의 품에 안겨서 잠이 들었다. 숨을 쉴 때마다 잘 다듬어진 가슴이 살짝 움직였다. 마동은 휴대전화 리모트 컨트롤 애플리케이션으로 노트북의 전원을 껐다. 생각지도 못한 돈이 생긴 화면 속의 에바가 화면에서 갑자기 뚝 하며 사라졌다. 요즘은 좋다. 휴대전화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렇게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에 마동은 역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점점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시간을 거꾸로 헤엄쳐가는 탐탁지 않은 방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에어컨을 틀지 않았지만 는개는 땀을 흘리지 않고 새근새근 새끼 고양이처럼 잠에 빠져들었다. 마동은 는개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얼굴 위의 머리카락을 살짝 걷었다. 는개는 산모 배속의 아기처럼 몸을 꼭 말고 마동의 가슴에 더 바짝 붙었다. 마동은 휴대전화를 터치해서 실내의 조도를 더욱 낮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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