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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an 21.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42

12장 5일째

342


 류 형사는 선배의 매제가 조깅을 하러 올라간 산을 조사한 결과,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실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종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했고 납치라고 하기에는 단서가 전혀 없었다. 오른쪽 운동화 한 켤레만 발견되었는데 아주 날카롭고 예리한 갈고리 같은 것에 할퀴어진 자국이 운동화의 끈 부분으로 지나가고 있었고 운동화는 끊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운동화는 보기에는 투박해도 아주 질긴 재질로 만들어져서 어지간히 날카로운 칼에도 잘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더더욱 기이한 사실은 오로지 오른쪽 운동화 한쪽만이 도시의 송전을 이어주는 철탑 밑에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옷가지나 머리카락, 단추 등 다른 건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반항한 흔적도 없었고 운동화가 떨어져 있는 부분의 풀이나 나뭇가지가 흐트러져있는 모습도 없었다. 혈흔의 자국도 발견되지 않았다. 오직 운동화 한 켤레만 찢어진 채로 떨어져 있었고 사람만이 그 자리에서 소거되어 버린 것이다. 기입되어야 할 기록이 그대로 빠져버린 것처럼 사람만 철탑 밑에서 사라져 버렸다. 철탑이 굳건하게 박혀있는 ‘산’이라고 불리는 거대하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괴생물체가 최원해를 잠식해 버린 것이 아니라면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했고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수 없는 논리였다.


 E아파트 현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더욱 비참했다. 류 형사는 자신의 관할구역에서 자기 색정사로 죽은 사람을 실제로 보기도 처음일뿐더러 타살로 보였지만 타살로 추정할만한 정황 증거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 비참해하고 있었다. 사고사로 잠정 지어지겠지만 혼자서 자신의 몸을 속옷으로 꽁꽁 묶고 여러 개의 브라와 팬티를 기도를 통해 위속에 마구 집어넣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신과에 다닌 기록이 없어서 정신적인 문제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자살을 할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비록 남편에게는 노리갯감이었지만 아내를 두고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어딘가 이상했다.


 미국의 대도시에서나 일어날 법한 사건이 류 형사가 있는 고장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범죄의 평준화가 된 것 같아서 씁쓸했다. 모든 것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대도시화되어간다. 10년 전 만해도 류 형사의 관할구역의 범죄는 죄질이 비교적 낮은 절도나 강도 사범이거나 우발적 범죄뿐이었다. 지역 구치소의 사방에는 방이 남아돌았고 구치소에서 나오면 재범의 우려가 있었지만 초범은 범죄를 다시 저지르지 않으려 했고 사건이 일어나면 일주일 안에 용의자는 대부분 체포가 되었다. 십 년이 흐르는 동안 세계 변화의 총량에 비해 이 도시의 변화는 스무 배는 더 부풀어 올랐다. 카세트테이프와 레코드는 사라졌고 음원이라는 파일만이 존재해서 류 형사는 음악도 들을 수 없었다.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를 넣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은 이제 류 형사의 찌그러진 자동차뿐이었다. 사람들은 사무실에 앉아서 휴대전화를 터치해서 영화예매를 하고 비행기 티켓을 예약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왔다. 모든 부분은 고도로 발전했고 류 형사가 살고 있는 이 도시도 거대 대도시로 거듭났지만 자신의 딸 수빈이만은 병원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초고층빌딩은 일 년에 몇 개씩 올라갔고 IT강국이라는 타이틀로 뉴스는 타국에 비해서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시기가 무척 앞당겨졌다는 보도를 늘 내보냈다. 사회적으로 모든 부분은 전부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발전을 했는데 수빈이만은 그대로였다. 경제발전과 함께 범죄도 진화를 계속했다. 그렇다고 하지만 이번 사건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명쾌한 해답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바라지도 않는다. 통계를 찾아봐도 비슷한 사건의 전례가 전혀 없었다. 대한민국의 경찰 조사방법은 이제 이번 사건 이후 많은 부분이 달라져야겠지만 어쩐지 정부에서 쉬쉬하는 눈치가 강했다. 검경이 합동수사를 하고 공개적으로 수배범을 포섭하면 포위망이 좁혀질 수 있지만 조용했다. 물론 수배범의 몽타주 하나 없는 것이 큰 문제긴 했다. 그렇지만 조용해도 너무 조용한 것이 수상했다. 소리 없이 본청에서 본부를 따로 마련해서 수사를 마무리 짓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분위기가 강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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