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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an 22.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43

12장 5일째

343.


 류 형사는 오래된 자신의 폴더 폰을 열었다. 딸깍하며 고개를 뒤로 젖히니 화면에는 수빈이의 웃는 모습이 나타났다. 한참을 쳐다보다가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보이는 그 세계가 자신의 미래라는 생각만 들었다. 수술을 한 번 받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빈이의 약한 신장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점점 검게 변해가기만 했다. 더불어 병원비마저 생각 이상으로 불어났다. 며칠 동안 수빈이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이러다간 이대로 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의 저 너머를 생각하다가 류 형사는 눈을 떴다. 무서운 생각이었다. 류 형사는 형사라는 자부심이 강했지만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어차면서 형사만 아니었다면 좀 괜찮지 않았을까. 자주 드는 생각이었다.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와 삶에 대한 압박이 강했지만 수빈이를 생각하면 나약해질 수는 없었다. 며칠 동안 갑자기 터져버린 사건 때문에 매달려야 했다.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고 먼지처럼 변해 버려서 죽었다. 기이한 사건으로 현장을 조사해야 하는 형사들은 당황과 황당함, 논리의 배제가 불러오는 스트레스는 말로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E아파트 203동의 사건은 전혀 진척이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부인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어도 차도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차도는커녕 부인의 정신은 점점 퇴화되어갔다. 어떤 인도영화에서 남자는 섹스를 하려고 결혼을 하고 여자는 결혼을 하려고 섹스를 한다는 대사가 있었다. 류 형사는 그 대사를 떠올렸다. 그리고 욕 한마디를 내뱉었다. 자신의 아내를 상대로 그런 성도착증을 보이다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성도착자들이 늘어간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별 지랄 같은 인생들, 씨팔.”


 그들은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많은 속옷을 위장에 집어넣을 수 있을까, 아니다, 그들이라고 말한다면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세 명일 수 있다는 말이다. 속옷을 집어넣은 가해자가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죽은 남자가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아니다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이건 사람이 한 짓이 아니다. 사람을 제외한 그 무엇, 어떤 무엇이 이렇게 한 것이라고 친다면 해답은 맞아떨어졌다. 속옷은 휴지처럼 말랑말랑 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속옷에는 와이어라든가 단추 같은 것들이 달려있어서 기도를 타고 들어가면서 목을 훼손시킬 수 있다. 그렇게 많은 양의 속옷을 집어삼켰다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누군가 시신을 묶어놓은 다음 입속에 속옷을 집어넣은 쪽이 이야기가 훨씬 수월하지만 단서는 전혀 없었다. 남자는 속옷을 음식처럼 삼켰다. 단서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누가? 도대체 누가?


 사건이 발생한 아파트 203동의 그 집에는 사람이 들어온 흔적도 없었다. 사람을 제외한 어떤 동물도 들어온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흔적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지독하게 깨끗하고 두 사람의 지문 이외에 집 안에는 그 누구의 지문도 나오지 않았다. 이 집은 이웃이나 타인의 왕래가 없었다. 사람이 사는 집에 사람이 드나드는 흔적이 없다는 것도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다. 옆집과 윗집의 탐문수사에서도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전혀 실마리가 없다는 것이다. 아파트의 주민들은 그 집 부부는 금실이 좋다는 말만 했다. 속옷이 기도를 막고 위장에 가득 들어차서 죽은 남자는 조경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을 가지고 있었으며 대학교에서 조경실무를 가르치는 교수직도 겸하고 있었다. 부부는 자식은 없었고 벌어들인 돈을 매일 기분 좋게 쓰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보였다. 시신이 발견된 방에서는 성행위에 쓰이는 갖가지 도구들이 널려있었다.


 류 형사는 현장에서 찍어놓은 사진들을 아무리 쳐다봐도 어떻게 사용하는 물건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류 형사는 이것을 성기에 집어넣는단 말이야?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신참 형사에게 성기구에 대해서 알아보라고 했더니 그 시장이 대륙붕만큼 넓었다. 내가 모르는 세계는 앞으로 얼마나 뻗어나가는 것일까. 인터넷으로 성에 관련된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최근 2년 동안 그 이전의 구매율을 20%나 넘어섰다. 콘돔의 종류만도 여러 종류나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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