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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06. 2021

먼 북소리

하루키 에세이

하루키의 여행기(라고 하기는 뭣 하지만 여행기를 쓰기 위한 단편적인 글들을 엮어서 낸 책) ‘먼 북소리’는 아마도 하루키의 에세이 중에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책일지도 모른다. 유럽 여행기이니 유럽의 각 나라로 번역이 되어 날개를 달고 날아갔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여타 에세이처럼 역시 재미있게 웃으며 읽을 수 있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또 모든 것을 버리고 쓸쓸하게 섬으로 기어 들어가 목숨을 담보로 ‘1984‘를 써 내려간 조지 오웰의 모습도 오버랩이 되는 부분도 있어서 이 책은 더 흥미로운 것 같다.

개인적으로 ‘먼 북소리’를 읽는 동안 몹시 행복했던 것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과 함께 읽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7 대 3 정도로 ‘먼 북소리’와 ‘이탈리아 기행’을 같이 번갈아 가며 읽었었다. 괴테는 참 오래된 사람인데 기묘한 인물이다. 90년대에 괴테의 글을 읽으면 90년대의 글 같고, 2000년대에 읽으면 괴테는 그 시대에 태어난 것 같다. 여하튼 기묘하고 기이한 인물이다.

괴테의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말 중에, 가슴이 작아서 고민하는 아내에게 당신의 심장소리를 이렇게 가까이서 들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는데, 요즘 그런 말을 나불나불 했다가는. 그 당시의 여자들도 피부를 하얗게 보이기 위해 피를 일부러 빼서 창백하게 다니기도 했다. 미를 향한 인간의 욕심은 정말 끝도 없는 것 같다.

먼 북소리를 읽으면 사실 정말 별거 아닌 이야기다. 그 나라, 그 도시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놨을 뿐이다. 요컨대 로마의 어디 사람들이 있는 마을에는 개들이 죽은 듯이 누워 있는데 사람들이 서로 모여 개들이 죽었는지 그저 잠을 자는지에 대해서 토론을 하고 있다. 툭 건드려 보면 될 텐데 심각한 얼굴로 개에게 그런 불편함을 끼치기 싫어서 모여 앉아서 개의 상태를 개가 아닌 인간들이 토론을 한다.

또 티브이를 보지 않는 하루키는 이탈리아에서는 티브이를 구입해야만 하는데 그 나라는 온통 예고 없이 파업을 하기에 항로, 교통, 우편에 이르기까지 도통 걷잡을 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탈리아 방송은 전부 재미라고는 1도 없는데 일기예보만큼은 재미있어서 날씨가 좋으면 마치 아기가 태어난 것 같은 얼굴로 예보를 하고 날씨가 좋지 않으면 잘못을 한 것 같은 시무룩한 얼굴로 예보를 한다.

이렇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하는데 읽으면 책을 덮을 수 없다. 쓸데없는 이야긴데 쓸모없지는 않다. 참 잘 적었다. 이제 더 이상 어떤 식으로도 표현이 될 수 없는 ‘사랑’에 관한 영화도 계속 나오고, 소설도 계속 나오는 걸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아무것이 아니게 적어내고 만들어내는 예술가들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말미에 가면 일본으로 돌아와 100만 부, 200만 부 이상 팔린 ‘상실의 시대’ 때문에 결락을 느끼는 부분도 알 수 있다. 왜 그렇게 느끼는지에 대해서. 하루키는 이 책에서 수영장 수면의 파동을 건들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물 밖과 물속을 넘나 든다. 때로는 피츠제럴드의 유쾌함이 보이지만 발자크 소설에 나오는 비 맞은 개처럼 차갑고 무거운 부분도 느낄 수 있었다.

#무라카미하루키 #하루키에세이 #하루키여행기 #먼북소리 #MURAKAMIHARUKI #이탈리아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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