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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12.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63

12장 5일째

  363.


 “감식반이 죽은 여자의 몸 위에서 피해자의 시신을 분리하려고 건드리는 순간 모래 알갱이처럼 무너져 내렸습니다. 다행히 감식반이 오기 전, 시체가 먼지처럼 변하기 전에 이 친구가 찍어놓은 사진입니다.”


 마동의 눈에 사진 속의 장면은 현실성에서 벗어난 모습이었다. 영화 속의 추악한 한 장면을 찍어놓은 사진처럼 보였다. 방독면을 쓰고 있어서 침대 위의 여자는 죽어있는지 잠을 자는지 확실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의 몸 위에 앉은 채 미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겨울바람에 마를 대로 말라버린 나뭇가지처럼 변해버린 남자가 사진 속에 있었다. 완전히 미라가 되어 버린 모습이라 사진으로 들여다봐서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는 없었다. 류 형사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겨 다음 사진을 마동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사체를 건드리자마자 먼지로 변한 후의 모습이었다. 여자의 모습은 그대로이고 그 위로 입자가 불규칙적인, 조금은 굵은 모래가 떨어져 있었을 뿐이었다. 뼈도 먼지처럼 바스러졌다. 류 형사의 이야기를 들이니 마동의 머릿속에서 이들의 행위가 선명해지는 듯했다. 류 형사는 생각하는 마동의 눈을 놓치지 않고 계속 바라보았다.


 “바다에서 바닷물이 끓어올라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익어서 죽어버린 50대 남자는 자신의 의붓딸을 늘 성폭행해오던 사람이었더군요. 그는 자신의 의붓딸뿐만이 아니라 옆집에 살고 있는 정신지체 여인도 성폭행을 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남자는 그 여자를 건드려도 괜찮다고 생각을 해버린 것이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꾸준히 한 것입니다.” 류 형사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는 동안 마동의 얼굴을 주시했다.


 “바닷물이 가스레인지 위 냄비 안의 물처럼 끓어올랐습니다. 바다에 가스호스를 꽂아서 펄펄 끓이듯 바다가 부글거리며 끓었습니다.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어요. 거인이 떠먹는 거대한 매운탕을 보는 듯 죽은 물고기들의 비린내가 바닷가에 퍼졌습니다. 그리고 이내 물고기가 썩는 냄새가 일대를 점령했습니다. 물고기 떼 사이에서 사람이 익어서 죽었습니다. 50대 남자는 성폭행을 수도 없이 저질러서 그런지 가장 고통을 심하게 받으며 죽어간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끓는 물속에서 다리와 팔의 감각이 점점 사라져 가고 폐는 뜨거워지는 주위 환경을 이겨내느라 얼마나 많은 팽창과 수축을 반복했을까요. 심장은 또 어떻게 그 펄펄 끓는 바닷속에서 극심하게 뛰었을까요.” 류 형사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마동의 표정을 살폈다. 마동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사진에 시선을 고정하고 미라처럼 움직임도 없었다.


 “우리 인간이 말이죠. 그러니까 남자들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성도착에 집착을 보이기도 합니다만 이성으로 눌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웃음을 지을 수 있고 본능만이 아닌 이성적으로 사고를 한다는 것이죠. 성범죄자들은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늘 처벌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가벼웠습니다. 죄를 짓고 버젓이 길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는 게 아디 가당한 일입니까.” 류 형사의 목소리는 조금 높아졌다.


 “성범죄자들이 응당한 처벌을 받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기다린 고도란 과연 무엇일까요? 고마동 씨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베게트도 고도가 무엇을 말하는지 확실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건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갑자기 그건 왜?” 마동은 사진에서 류 형사의 눈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 심오한 대답이군요. 당신의 표정만큼 심오합니다. 글쎄요, 저도 왜 고도를 기다리는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군요. 마땅히 할 말을 찾다가 그럴 수도 있고 말이죠. 대학시절 딱 한 번 읽었던 책이라서 기억에 남아있는지도 모르겠군요.” 류 형사는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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