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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13.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64

12장 5일째

364.


 “피해자들에겐 미안하지만 어떤 불확실한 존재가 그들의 목숨을 가져간 것이 옳다고 봅니다. 성범죄자들은 제2, 제3의 범죄를 저지릅니다. 목숨이 사라진다면 더 이상의 성범죄는 저지르지 못하죠. 피의자들은 분명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 처벌을 한 불확실한 존재가 어쩌면 고도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해봤습니다. 지금은 그 어떤 추리를 해도 사건에 다가갈 수 없으니 잡다한 생각을 다 동원해 봅니다. 개인적으로 더 깊게 추리를 해본다면 그 불확실한 존재는 언젠가 오래전에 자신도 그런 학대를 받았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어떠한 장치를 동원해서 죄질이 나쁜 사람부터 죽이는 것입니다.” 마동의 표정과 눈빛을 주시했다. 류 형사는.


 “그렇다고 해도 하룻밤 만에 미라처럼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겁니다. 아니! 없을 겁니다. 무슨 장치를 어떤 방식으로 사용했는지는 몰라도 영화 속이 아닌 이상 그렇게 감쪽같이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류 형사는 말이 끝이 났음에도 마동에게 향해있던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기침을 한 번 했다. 헛기침이었다.


 “이번 사건을 조사하면서 그렇게 많은 성기구들이 사용되는지 몰랐습니다. 세상은 정말 넓다고 하더니 성기구의 다양한 종류를 보고 놀랐고, 그런 기구를 통해서 그걸 느끼다니 너무 이상한 일입니다. 바다에서 죽어버린 50대 남자의 가족은 보상금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의붓딸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보상심리라고 해도 상관없지만 그의 부인이나 다른 가족들 역시 그가 죽어서 슬퍼하는 기색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류 형사의 목소리 톤이 조금 낮아졌다.


 “꽤 흥미로운 점은 말이죠. 그 최원해라는 사람의 가족도 비슷했습니다. 부인이 의뢰를 하긴 했지만 부인의 얼굴에서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 형사들은 사람의 표정을 보고 심리상태를 꽤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표정을 주시하고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사람이 마음속에 있는 70퍼센트를 말하고 있는지, 50퍼센트를 말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경찰의 자랑이라면 자랑입니다.”


 “그래서 전 어떻습니까? 제 얼굴의 표정을 보고 무엇을 좀 알아냈습니까?”


 류 형사는 마동의 말에 살며시 웃음을 띠었다. 이내 그 웃음은 사라지고 볼펜을 입에 물었다.


 “이제부터 알아내야죠”라고 말하며 이번에는 소리를 내어 크게 웃었다. 마동이 보는 류 형사의 웃음에는 어딘지 모르게 비탄이 섞여 있었다. 류 형사 의식의 깊은 통로를 따라 찐득하게 흐르다가 예고도 없이 튀어나온 웃음이었다. 누가 보면 큰소리의 호탕한 웃음이겠지만 그 속엔 비통과 슬픔이 골고루 버무려져 있었다. 무거운 웃음이었다.


 “마찬 가지입니다. 아파트에서 하룻밤에 일어난 두 사건의 피해자 역시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이나 친인척이 없다는 겁니다. 사람이 죽어 버렸으니 그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들을 동정하거나 그들이 죽었다고 하늘에 대고 욕을 하는 이들은 적어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입 밖으로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들의 죽음을 당연히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의 생명을 사라지게 한 불확실한 존재는 피의자 주위 사람들의 마음까지 모두 알고 범행을 저지른 것 같은 느낌입니다. 30대 독신 남자가 운영하는 바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의 말을 들어봐도 죽은 사장을 동정하는 말은 하지 않더군요. 속옷을 열몇 개나 삼킨 남자의 주위 사람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그 불확실한 존재는 죽어 마땅한 사람의 견적을 자세하게 간파하고 수치의 범위로 계산을 한 다음 몇 날 며칠을, 아니 몇 달을 조사하여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사람을 당연하게 사라지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실종자를 포함해서 죽은 이들은 법망을 피해서 타인에게 성(性)적으로 교묘하게 피해를 주며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며 살아온 것에 그 불확실한 존재가 개입을 한 것입니다.” 류 형사는 잠시 공백을 만들었다. 공백은 여름이지만 차갑게 내려앉았다. 류 형사는 볼펜을 입에 물었다 빼는 행동을 반복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볼펜이라는 물품으로 탄생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마동은 잠시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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