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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01. 2021

회전목마의 데드히트

하루키 단편 소설


하루키의 단편 소설이나 에세이가 문학동네로 넘어온 이래 한 책에 10편 이상 실리는 경우는 없어졌다. 책 표지에 좀 더 신경을 썼다고 해야 할까, 또 속지가 좀 고급스러워졌다. 그래서 하루키의 이 책을 처음 접한다면 고개를 끄덕하게 되지만 하루키의 문학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은 ‘노르웨이 숲’이나 ‘먼 북소리’처럼 알려진 책으로 접한 뒤에 단편 소설집들을 읽게 되기 때문에, 가격이나 내용이나 좀 애매한 책이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상술이 눈을 감아도 드러나는 책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이해는 충분히 한다. 사람이든 단체나 조직이든 프로가 되면 이해관계에 얽혀 있기 때문에 내 편한 대로 할 수만은 없다.


몇 년 전까지는 새로 나온 하루키의 소설이라고 덥석 집어서 어디 구석진 곳에 앉아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 뭐야? 전부 읽었던 거잖아,라고 하다가 계속 읽으면서 아아 맞아, 이 부분이, 그래 택시에서 만난 남자가 그랬지, 지금은 없는 왕녀는 맞아 그런 여자였는데 변해버렸지, 제목이 그때는 지금은 없는 공주였는데, 하며 다시 읽은 재미를 찾아가게 된다.


그런 수순 때문에 하루키의 책이 나오게 되면 하, 요것 봐라, 또 상술의 손이 뻗치는구나, 하면서도 어디가 바뀌었지? 하며 집어서 다시 읽게 된다. 읽었던 책을 계속 읽는 건 어쩌면 읽는 사람의 성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성향은 참 변하지 않는다. 갔던 곳에 가고, 앉던 곳에 앉고, 먹던 걸 자꾸 먹는다. 책에 관한 것도 생각해 보면 하루키가 아니라도 늘 그랬던 것 같다.


무라카미 류의 ‘식스티 나인’이라든가 ‘코인 로커 베이비’도 여러 번 읽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도 민음사에서 나온 두 가지 번역본이 있다. 그걸 번갈아 가며 읽었다. 99년도 번역본보다 2011년도 번역본은 훨씬 얇은데 이 번역본은 아마도 체코 출신의 쿤데라가 프랑스로 귀화하여 프랑스어로 번역된 것이 독일로 가서 독일어로, 이것이 다시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서 나온 것으로 안다. 굵기가 삼 분의 일 정도가 줄었는데 읽으면 굵은 '참을 수 없는~~'보다 느낌이 덜하지 않다. 아주 신기했다. 얇아졌는 만큼 함축적이고 서정적이며 도취적이라고 해야 할까. 여러 번 읽으면 이런 재미에 빠지게 된다.

하루키의 이 단편집도 사소설에 가깝다. 레더호젠이라는 건 독일식 전통 멜빵바지를 말한다. 자세한 설명이 검색을 해도 안 나온다. 우리나라로 치면 설빔 같은 의미일까. 특정 옷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 아침에 입는 옷이면 꼭 그게 한복이 아니더라도 설빔으로 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오래전 하루키는 인터뷰를 왕왕할 때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서 내내 비슷한 작가들의 이름을 대는 것이 귀찮아서 아예 없는 작가의 이름을 지어내서 말하기도 했다. 기자들은 모르니까 그냥 막 싸질러도 별 큰일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 것처럼 이 단편 소설들도 사소설의 형태를 지녔지만 형태를 벌리면 알쏭달쏭하다. 꼭 동화 속을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하루키의 소설 속에는 루이스 캐럴의 캐릭터만큼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양사나이, 난쟁이도 그렇고, 고양이 고마 녀석, 키키, 강치, 티비피플, 공기번데기, 이데아 녀석, 야미쿠로 등 모두가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하다. 이런 얘기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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