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5일째 저녁
389.
정부 쪽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감시를 풀라는 명령을 윗선에서 전달받았다고 했다. 마동은 전화통화로 스미스 요원에서 그렇게 전혀 들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혼란이 일어난다는 말입니까?”
마동의 말에 장군이는 바다에 시선을 두고 침묵을 지켰다. 침묵은 언제나 그렇듯 무겁고 묵직했다. 억지로 들어 옮기려 해도 그 무게가 상당해서 어른 몇 명으로 어림도 없는 무게였다. 비는 떨어져서 반듯한 장군이의 이마를 타고 흘렀다.
-나는 인간들을 좋아하다 인간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타인을 무시하며 자신이 쌓아 올린 것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가 그 쌓아 올린 것이 조금이라도 무너지면 굉장히 비참해하며 한껏 나약해지다 나약함이라는 자아에서 벗어나면 상대방을 헐뜯고 비난하기 일쑤가 되다 마지막에는 공격적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그런 인간을 나는 좋아하다 그런 인간이 지극이 인간적이다-
장군이는 또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이번 침묵은 처음의 침묵보다 길지 않았다. 마동은 그 침묵을 침착하게 받아들이고 왼손으로 우산을 옮겼다.
-개에 대한 형성 변이는 매사에 게을러지게 마련이지만 선택이 좋다 나는 이제 다른 동물로 변이 하는 방법을 잊어버려다 무능해진 거다 이쪽 분야에서는 무척 실력이 하락하고 말았다 이 생활이 편안하니까 말이다 인간들은 개를 좋아하는 종족이다 적당히 짖어주고 꼬리를 흔들어주면 인간들은 자신의 개에게 많은 것을 내어준다 무서운 건 말이다 저곳을 통해서 그 두려운 것이 이곳에 도달하고 나면 그러한 인간들이 혼란을 겪게 되다 말 그대로 혼. 란.이다 서로에게 감정 없이 칼을 겨누게 될지도 모른다 중간단계가 없어져버리다 슬퍼하거나 나약해하는 순간이 사라져 버린다 바로 환란이라고 말하고 싶다 더 이상 개 따위를 좋아하지 않고 인간들은 상대방에게 날을 휘두르게 되다 집에서 길러지던 개들은 무참히 도륙당하거나 쫓겨나서 개의 모습에서 벗어나게 되겠지 그 상대방이라는 것은 어제까지 서로 한 이불을 덮고 자던 부부이기도 하고 방금 전까지 사랑을 속삭였던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갑자기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게 인간들이 변하는 것이다 내가 알던 사람은 더 이상 업다 인간이 없어진다는 건 나 역시 힘이 든다는 말이다-
이곳을 덮치려는 것은 어떤 존재이기에, 내 속에 있는 것은 또 무엇일까.
마동은 자신의 몸이 불길에 휩싸여 깊은 곳으로 떨어지며 봤던 고통에 찬 얼굴들이 떠올랐다. 작은 얼굴들이었지만 얼굴이 없었다.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일그러진 얼굴에는 거대한 통증의 고통이 여미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고통이 가득한 얼굴들이 너구리의 몸뚱이에 붙어있었다. 얼굴들이 어디선가 본 얼굴들이었다. 죽어가던 마동의 아버지의 얼굴이었고 기찻길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의 얼굴이었다. 군대에서 자살 한 전우의 얼굴이었고 아기를 유산한 연상의 동거녀 얼굴이었다. 그 얼굴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일그러져 있었다. 여러 개의 혼란스러움이 혼재해 있었고 얼굴들은 울부짖었다. 우는 소리가 마동의 고막을 찢어내고 가슴을 할퀴었다. 그 얼굴들의 코에서 꿈틀거리는 괄태충이 기어 나왔다. 그들은 괄태충을 떼어내고 싶었지만 손이 없었다. 얼굴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들은 마동을 찾았다. 그 울음소리는 소리라는 균형에서 벗어나서 불규칙적이었고 자각적이었다. 무구한 여러 개의 소음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마동의 고막을 세차게 건드렸다. 미세하게 뾰족한 바늘로 찌르는 고통에 찬 얼굴들의 울부짖음은 더욱 커져갔다. 너구리의 눈은 여전히 냉소를 가득 감고 불사의 몸으로 긴 시간을 마동을 따라다녔다. 고통에 찬 얼굴을 괄태충 수십 마리가 덮어버리고 얼굴들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얼굴은 고통을 호소하다 사라졌다. 그 얼굴이 사라지고 연기가 남은 곳에 또 다른 얼굴들이 탄생했다. 너구리는 몸을 돌려 등을 보였고 등에는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이 달려있었고 소피의 얼굴이 달려있었다. 옆에는 분홍 간호사의 얼굴이 보이고 마지막으로 밑에는 는개의 얼굴이 무표정하게 붙어있었다. 마동은 너구리에게 달려가서 그 얼굴들을 없애려고 했다. 하지만 마동의 다리는 여전히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 봤지만 너구리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고 너구리는 뒤를 돌아보며 등에 달린 그녀들의 얼굴을 손으로 떼어 내 씹어 먹었다. 마동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어느새 마동의 얼굴은 비를 많이 맞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