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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05. 2021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

일상 에세이

피카소 그림 오마주


열차 안에서 햄버거 먹고 안하무인 여자의 행태를 보며 참 말이 통하지 않는,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다. 나도 며칠 전에 그런 사람을 겪게 되었는데 한국 사람에게 한국말을 하는데 통하지 않으면 참 답답하다.


사진관에는 신학기가 되면 학생들이 증명사진을 찍으러 온다. 작년에 터진 코로나 때문에 그 이전만큼 사람은 없지만 올해에는 모두가 개학을 맞이해서 등교를 하니 그에 따른 준비를 해야 한다. 그중에는 선생님에게 낼 증명사진을 들고 가야 한다.


어떤 학교, 어떤 선생님에 따라 직접 폰으로 찍어서 그걸 학생증이나 생부에 사용하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게 찍은 사진을 자고 일어났을 때 코에 난 커다란 여드름 만큼 싫어하기에 보통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어서 보정하기를 바라고 있다.


3월 1일까지 연휴라 학생들이 시내에 있는 사진관에 사진을 찍으러 나왔다. 하지만 방역수칙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 사람이 많이 대기할 수가 없어서 일단 5명이 되면 뒤에 오는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보내거나 돌아다니다가 사람이 없을 때 오라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그렇게 해야 할 수밖에 없다.


사진관에 두 명의 학생이 들어와서 사진을 찍고 보정을 하고 있었다. 그때 한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들 둘을 데리고 들어왔다. 일단은 5명이 넘었다. 아이들은 이제 중학생이 된 아들과 여고생인데 아들만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아이들만 남기고 가라고 할 수 없어서 두 명의 학생을 빨리 보정해서 보내야 했다.


그 어머니는 갓 중학생이 된 아들의 빳빳한 새 교복을 만지고 이리저리 몸에 맞게 각을 잡아 주었다. 그때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더니 여기로 오려면 이렇게 이렇게 오라고 전화기 너머 누군가에게 말했다. 그렇게 부른 사람이 그 어머니의 어머님과 남편이었다. 사진관은 6, 7평 정도로 좁은 공간이라 그 어머니의 남편과 그 어머니의 어머님까지 가게 안에 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좁은 공간이니까 5명이 넘으면 안 되니까,라고까지 말했는데 느닷없이 “우리는 직계 가족이거든요. 직계 가족은 괜찮거든요”라고 하는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 어머니 가족 이외에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까,라고까지 말했을 때 (손을 외투 안으로 넣는 시늉을 하며) “저는 그래서 등본도 요즘 들고 다니거든요. 우리는 직계 가족이라 아무 문제가 없거든요”라는 것이다.


그때, 이 어머니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타인의 사정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이후의 오고 갔던 이야기를 더 할 수는 있지만 하고 싶지는 않다. 그 아주머니가 미우니까 아이들도 밉게 보였다.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시종일관 계속 뭐라 뭐라 자신의 어머니에게 말을 하는 것이다. 말을 많이 할 때는 마스크 정도는 쓰고 해야 한다고 다른 아이들은 다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하고 있는데 유독 그 어머니의 아이들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직 내 아이들만 소중해!라는 아우라가 마구 몸 밖으로 터져 나오는 그런 스타일인 것이다. 솔직히 외투 안에 손을 넣었을 때 마음 같아서는 그래요? 어디 보여줘요?라고 할 뻔했다. 아마도 가지고 다니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저 그렇게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어머니가 오기 전에는 한 선생님이 자신의 아이들 6명을 데리고 왔는데 두 명 씩 거리두기를 해서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앞사람이 다 되면 한 명씩 들여보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세상에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알겠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 어째서 아들, 딸, 엄마, 아빠, 할머니, 이렇게 뭉쳐서 다닐까. 우리는 직계 가족이라 아무 상관없거든요, 라는 말이 맴맴 돌았던 날이었다. 


모르는 사람들과 매일 만나다 보니 이런 아주머니는 그래도 약과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에 널려있고 그 사람들과 어떻게 부딪치느냐, 그렇지 않고 하루를 보내느냐, 그 정도의 삶을 우리는 살고 있다. 어떤 면으로 보면 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도 일회성이지만 만약 회사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상사로 두거나 밑의 직원이라면 매일매일 이런 고욕을 치러야 할 것이다. 


아, 그래서 어떻게 됐냐면요. 남편과 할머니를 가게에는 못 들어오게 했고, 가게 앞 카페에서 깨물어 죽이고 싶은 꼬꼬마 아들의 사진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요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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