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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07. 2021

비바람치는 밤과새벽 사이

봄인 것이다

피카소와 칸딘스키를 오마주해서 그려본 그림

집에 들어와 밥을 먹으며 잠깐씩 티브이를 보는데 티브이가 나오지 않은지 며칠이 되어서 라디오만 듣고 있으니 전혀 코로나에 대해 무뎌지는 기분이 든다. 라디오에는 노래가 나오고 보다 따뜻하고 보다 즐겁고 보다 평온한 이야기가 흐른다. 라디오라는 건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했어도 가지고 있는 속성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것을 보면 라디오를 진행하는 디제이는 참 대단하다. 그들도 사람이라 집안에 누군가가 아프거나 사고가 날 수도 있고 희로애락이 다양할 텐데 언제나 늘 청취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사연에 귀 기울이고 청취자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노래라는 건 정말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그런 무엇일까. 


어제는 아침의 차가운 공기 속에 봄의 기운이 가득했다. 낮에는 겉옷을 벗어도 될 만큼 포근했고 저녁에 조깅을 할 때에는 많은 땀으로 티셔츠가 축축해졌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 겨울의 냉기가 어제의 봄기운을 잠식하고 차갑고 시린 비를 하루 종일 추적추적 내리게 하더니 강풍마저 불었다. 결국 조깅을 포기했다. 올해는 이제 두 달 지났는데 이틀을 뛰지 못했다. 하루 정도 달리지 못하는 게 뭐 큰 대순가,라고 할 수 있지만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당최 여기 서서 뭐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만다. 


요즘은 책을 읽다가 느닷없이 유튜브를 열어 유튜브의 섬네일을 보고 영상을 찾아보다가 두 시간 이상이 훌쩍 지나간다. 딱히 나에게 유익한 정보도 없는데 그걸 앉아서 보고 있다. 유튜브를 보면서도 나는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지? 같은, 청춘일 때나 하던 방황의 고민 같은 것을 하고 있다. 


날씨는 아직 추운데 아무래도 봄인 것이다. 봄이 되면 나도 알 수 없는 감정선이 온몸을 지배한다. 봄이 오면 봄을 타게 된다. 찬란한 봄이 세상에 도래하면 반비례적으로 나는 깊은 결락을 느끼고 만다. 세상은, 인간의 삶은 정말 한 인간을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 시작도 알 수 없는 불안 때문에 고통으로 아프기 싫어서 약을 먹어야 한다. 아프기 전에 미리미리 약을 먹어둔다. 아프게 되는 게 너무 싫기 때문에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는다. 마음이 아프기 전에 미리 약을 먹는다. 


움직이지 않는 영원한 과거와 잘 마주 할 수 있는 약, 오래된 주스 밑바닥에 깔린 찌꺼기처럼 미미하게 남아있는 그리움에 휩쓸리지 않게 하는 약, 조금 슬픈 일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약을 미리미리 잘 챙겨 먹어 둔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봄바람에 떠밀려 나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무섭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시'다. 시는 시인의 고통으로 태어났지만 태어나는 순간 시인의 것이 아니라 읽는 이들의 것이 된다. 그리하여 시는 읽은 이의 메타포 속으로 들어가 약이 된다. 약은 읽은 이의 세포 곳곳으로 퍼져 들어가 고통을 덜어준다. 


약을 짓는 약사도 시인이다. 약을 먹는 이들의 위로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제조실에서 시를 짓고 있다. 나는 한 사람의 약사를 알고 있다. 그녀가 쓰는 글은 모두가 시다. 늘 아프고 고통에 힘겨워하지만 격렬한 사랑을 갈구하는 멋진 약을 짓고 있다. 자신을 거짓 없이 과감 없이 드러내 보이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나의 치부를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이 세상을 두 발로 서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매일 시를 짓고 있다. 시를 짓는 순간 시는 봉투에 담겨 환자의 손으로 옮겨져 더 이상 그녀의 것이 아니다. 시는 환자의 아픔을 덜어주고 약은 읽는 이의 고통을 덮어준다. 나는 그런 멋진 약사를 알고 있다. 


이제 시간은 새벽 두 시. 술을 마시기엔 좀 늦었고 커피를 마시기엔 이른 시간이다. 창밖에서는 바람의 소리가 백일 된 아이의 울음 같다. 라디오에서 기타 연주가 나온다. 기시감이 든다. 7년 전 오늘도 새벽 두시게 창밖에는 바람이 몹시 불고 겨울에서 봄의 경계에 서서 이사토 나카가와의 기타 연주를 들었다. 그때와 지금의 다른 점은 당연하지만 나는 7년만큼 밥을 먹었고, 7년만큼 달렸고, 7년만큼 나이를 먹었고, 7년이 지나도 죽은 사람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다. 중간에 만난 사람에게 미안해서 못되게 굴기도 했다. 러브레터의 죽은 이츠키처럼 이츠키를 닮은 히로코를 좋아하게 된 경우처럼 닮은 사람을 만나고 다닌 나 자신이 정말 밉기도 했다. 닮지 않은 사람에게는 전혀 호감을 가질 수 없는 병에 걸렸다. 그리고 약도 소용이 없다. 그냥 이대로 몸에 돌 하나를 삼켜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2시 11분. 이제 잠을 청해야 하는데 잠은 아직 팔을 뻗어도 잡히지 않고 밤은 흑색으로 덮여 소음이 죽었고 소리만이, 바람 소리만이 기생하고 라디오에서는 음악이 흐르고 싸구려 와인 한 병이 저기 있다. 2시 13분. 밤과 새벽 사이. 이 집에서 잠들지 않는 건 나와 진열장 속의 피규어들. 불을 전부 끄고 내가 잠이 들면 피규어들이 토이 스토리처럼 일어나서 움직이는 상상을 자주 한다. 아마 집에 피규어가 좀 있는 사람은 그런 상상을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강하게 하는 이유는 어느 날 문득 건들지도 않았는데 위치가 바뀐 것 같거나 데드풀의 루즈 하나가 떨어져 있다거나. 피규어처럼 영원히 시간 속에서 멋진 모습으로 그대로 머물었으면.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지는 봄의 길목에 있는 밤과 새벽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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