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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02.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12

14장 6일째

412.


 는개는 다른 모습이 아닌 어김없는 그녀의 모습이었고 마동은 그녀의 부재가 가져왔던 무상과 공허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그것은 달빛보다 차가웠고 어마어마한 허전함과 쓸쓸함이었다고 마동은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니힐리즘에 차츰 먹혀 들어가고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자신이 되어간다고 마동은 말해주고 싶었다. 마동의 가치체계가 완연히 붕괴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이 내 눈을 도려내려 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두려웠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녀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동은 말할 수가 없었다. 마동은 는개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보았다. 보고 싶었던 얼굴이었다. 격렬하게 원했던 얼굴이었다. 마동은 손을 들어 는개의 얼굴을 만졌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일었다.


 “당신, 연락이 되지 않아 점심시간에 이렇게 와봤어요. 당신이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줄 알았어요.”


 는개의 품에 안겨 있다가 마동의 품에서 떨어져 두 팔로 마동의 팔을 잠시 잡고 마동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는개의 눈 속에 비친 세계는 마동의 마음에 투영되어 한정된 세계를 넘어섰다. 그 이상의 세계가 그녀의 눈 속에 있었다. 그 너머의 세계에는 는개의 작고도 애절한, 깊은 마음이 투영되어서 존재해 있었다. 는개의 작은 마음은 마동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녀의 세계를 알아차리자 마동의 마음은 일렁거렸다. 해일의 건조처럼 조수간만의 차가 서서히 변하듯 마동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는개의 눈을 통해 작은 마음이 와 닿았다. 두 손을 모으고 뜰채처럼 뜨면 두 손에 작게 떠오를 만큼 아주 가볍고 미약한 마음이었다. 그 작은 마음은 마동에게 닿을 수 있게 마동의 마음속에 흔적을 남겨 놓았다. 이제 마동은 남겨놓은 흔적을 따라서 는개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 왜 전화도 안 받았어요?”


 는개는 정의할 수 없는 몇 개의 미소를 지었고 현관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는개가 거실로 올라와서 어젯밤의 상황을 눈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굴러다니는 와인 병을 치웠다.


 마치 아내처럼.


 “잠들어서 듣지 못한 것 같아”라고 마동이 말했다. 제대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거북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형사에게 전화가 왔었어요. 아마 조금 있으면 당신에게 올 것 같아요. 이전에 만나서 형사가 뭐라고 그래요?”


 는개는 비에 젖은 옷을 벗었다. 비를 털어냈다. 마동은 그녀에게 형사와 만난 이야기를 해주었다. 밖은 비가 많이 쏟아지고 있었는데 는개는 우산을 들고 오지 않았다. 바쁘게 오느라 비를 많이 맞았다. 머리가 젖었고 블라우스와 치마가 비에 젖어 있었다. 아파트 근처 어딘가에 내려서 집까지 뛰어왔다. 마동의 시선을 는개는 몸으로 받았다.


 “밖에 비가 많이 와요. 회사에서 나올 때는 괜찮았는데, 하늘에 검은 구름이 가득해요. 어제저녁에 B블록 사거리 인슈 빌딩의 상층부가 무너진 사건이 발생했어요. 알죠?”


 “그래.” 마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빌딩 밀집 지역이라 인근의 피해도 심각하다고 해요. 비가 많이 오니 복구도 느려지고.” 그녀가 머리를 털며 말했다. 는개가 머리를 털 때마다 기분 좋은 향이 번졌다.


 “5년 전에 실종된 여자 두 명의 시체가 건물이 무너지면서 발견됐데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말이에요. 어쩐지 이상하지 않아요?” 그녀의 향을 누린내가 가득한 어두운 마동의 거실에 골고루 뿌려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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