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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03.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13

14장 6일째

413.


 “경비원도 추락사를 했다는 거 알아요? 일 년 전에 보험회사에 찾아온 여자가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밤이 되도록 발견이 안 되었다가 경비원이 발견을 하고 경찰서에 연락을 했는데 죽었다고 하더군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죽을 수가 있을까.” 마동은 조용하게 말했다.


 “아마도 그 경비원이 바로 연락을 하지 않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 여성에게 성적 욕망을 채우고 연락을 했나 봐요. 그러는 사이 아마도.”


 흠.


 마동은 거실의 커튼을 걷고 베란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암울한 어둠만이 가득한 세계였다. 어두운 풍경의 어두운 하늘에 검은 구름이 잔뜩 깔려있었다. 그 사이에서 마른번개가 이질적인 밝음으로 한 번씩 번쩍거렸다. 기존의 모습보다 더 커지고 무서운 모습이었다. 지그재그로 하늘에서 바다의 어딘가로 떨어졌다. 아마도 그 밑에 서 있다가는 형태도 남지 않고 그대로 재로 변할 것만 같았다. 장군이가 말한 알 수 없는 무서운 존재가 다가오고 있다. 가까이 온 것이다. 무서운 존재는 사람들을 덮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사람들은 곧 공황상태에 사로잡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눌 것이다. 오늘 밤이면 그 무서운 자줏빛 해무가 인간의 세계로 완벽하게 밀고 들어올 것이다.


 는개는 어느새 주방에서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녀가 주방에 들어서니 어둑하고 죽어가던 거실이 환하게 살아났다. 아무래도 주방에 들어서면서 그녀는 요술쟁이의 이사벨처럼 코를 찡긋찡긋 하는 모양이었다. 는개가 만드는 음식의 냄새는 거실에 가득 들어차 있던 누린내를 밀어내고 내려앉았던 그녀의 향 위에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저도 점심을 먹지 못했어요. 어쩐지 입맛이 없어요. 입안이 텁텁하기도 하고…….”


 는개는 냄비에 물의 양을 조절하고 냉장고에서 어떤 식재료를 꺼내서 도마 위에서 썰었다.


 “죽을 만들게요. 같이 먹어요. 전 이거 먹고 가시 회사로 나가봐야 해요. 그리고 저녁에 다시 올게요”라고 는개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듣기 좋은 말이었다. 그것은 약속이었다. 마동은 약속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누군가와 약속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쌍방 간의 합의 하에 의해서 서로 약속을 정하고 만나고……. 약속에 대해서 그렇다,라고 확실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 명령을 받거나 지시를 내려 본 적은 있었지만 약속을 정하고 약속시간에 맞추어 약속 장소에 나갔던 기억도 별로 없었다. 약속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그렇지 못한 것인지 지금 상황에서는 판단이 더뎌지기만 했다. 약속은 지켜져야 마땅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소피와의 약속이 떠올랐다. 소피와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할 것이다. 소피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는개가 저녁에 다시 만나러 온다는 말에 이상하게 마음이 뛰었다.


 날 만나러 다시 온다는 말에 왜 가슴이 이렇게 뛰는 걸까.


 는개는 자신의 옷을 벗어서 선풍기 바람에 말리고 다시 마동의 옷장에서 면 티셔츠와 녹색의 체크무늬 반바지를 꺼내서 입었다. 비에 젖은 머리를 말리고 난 후 포니테일로 묶은 채 주방에서 죽을 끓였다. 아무것도 없는 주방에서 는개는 코를 찡긋하여 요술을 부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당신, 음악 좀 틀어요, 노래가 듣고 싶어요.”


 마동은 는개의 말에 아이팟의 시작 버튼을 눌렀다. 엠피쓰리는 반응을 하며 노래를 B&O 스피커를 통해서 토해냈다.     


 이제는 세상의 끝, 세상의 끝. 이미 세상이 끝나버렸어.

 우리는 결국 어두워지는 하늘 밑에서 세상의 끝을 맞이하네, 맞이하네.  

   

 마동은 얼른 다른 노래로 바꾸었다. 듣다가 중간에서 꺼져 버렸는지 딱 저부분에서 노래는 다시 재생되었다. 정당한 의미를 지니고 노래는 흘러나오고 있었겠지만 마동은 ‘거울 잠’이라는 밴드가 부르는 노래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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