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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17. 2021

서류 인간 1

단편 소설


1.

 구치소의 영치품 관리부는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서류를 정리하고, 확인하고, 재고처리와 영치품이 들어온 양이 서류에 맞게 들어왔는지 맞춰보는 작업으로 하루가 빠듯했다.


 나의 책상에는 언제나 노란 서류철이 한가득 있다. 요즘처럼 재빠르게 움직이는 정보화시대에 서류라니.


 하지만 서류로 문서화 해 놓지 않으면 모든 것은 무용지물이란다.


 이봐, 너는 졸병이니까 이 서류는 자네가 작성을 다 해놔야 하네.


 공무원은 정시출근, 정시퇴근이라는 말은 개에게나 줘 버려야 한다. 오늘은 점심도 먹지 못했다. 계절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영치 품목이 많이 바뀐다. 과일도 제철과일로 바뀌고 속옷이나 양말도 그 두께가 조금은 얇아지는 걸로 들어온다.


 조선족들의 대거 밀입국이 적발되어서 어제는 삼백 여명의 조선족 재소자들이 구치 들어왔고  소식을 들은 시민단체에서는 오늘 어마어마한 규모의 영치품을 기부했다. 지금  눈에 보이는   영치품을 처리해야 하는 서류들뿐이다.


 노란 서류철에는 영치 품목이 하나하나 종목 종목 기입되어 있고, 그 옆에는 수치나 시간이 또 하나하나 적혀있다.


 내가 담당하는 서류들의 사방(감방)은 여사(여자 사방)를 제외하고 1 사부터 4사 6방까지다. 정치사범이 있는 사방까지의 영치품 서류 정리가 다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인 것이다.


 점심을 건너가며 사방의 영치 품목의 정리는 미뤄두고, 조선족들의 영치품의 정리를 먼저 해야 이 영치품이 조선족들의 사방으로 올라갈 수 있다. 보안과장의 특별지시로 조선족들의 영치품을 먼저 올려 보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오른편으로 평소에 해야 할 사방의 영치품 서류철이 가득 쌓여있고 어제부터 정리를 하는 조선족들의 서류를 지금 정리하고 있다. 300백 명 중에 50여 명이 여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품목을 골라내어서 여자 사방의 영치품을 관리하는 여직원에게 인계를 해야 한다.


  바쁘다. 서류는 사람을 바쁘게 한다.


 서류가 없는 인류는 구원될 수 없으며 유지될 수 없다는 게 내가 그동안 터득한 이치다. 몇 해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숨이 끊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서류가 내 앞으로 밀려왔다. 병원에서는 그 절차나 장례 관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에 관한 상당한 서류가 내 앞에 놓였다. 그것이 끝이 나니 집의 이전 문제 라든가. 자동차의 명의 이전 같은 서류가 또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저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류가 겁이 났지만 나는 그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집의 이전 문제로 법원과 구청을 여러 번 오고 갔다.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서류는 사람을 고달프게 한다.


 법무부에 속한 구치소 공무원 시험을 합격하여 부서를 배치받을 때에도 서류를 작성했다. 인간은 살면서 얼마만큼의 서류를 작성하고 없애고 또 봐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정말, 정말이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저녁 6시다. 남들은 다 퇴근이다. 보안과장의 지시 때문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조선족들의 영치품의 서류를 정리를 해야 한다. 전부 웃으며 퇴근을 한다. 점심을 먹지 못해서 그런지 몸에서 혈당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 곳의 밤이 그렇듯이 구치소의 밤도 점오가 끝이 나면 고요하다. 구치소의 재소자들은 교도소의 재소자들보다 조금은 자유롭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 반대라고 해야 할까. 그들은 미결수이기 때문에 기결수인 교도소 재소자들의 얼굴과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좀 더 여유롭거나 더 초조하거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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