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Mar 18. 2021

서류 인간 2

단편 소설


2.

 그런 그들도 저녁 점오 시간은 엄숙하고 엄격하게 이뤄지고 그 점오가 끝이 나면 고요함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구치소라는 요새는 그 나름의 세계를 형성하고 야간근무조만 근무를 하게 된다.


 그러한 상황과는 무관하게 나는 쌓여있는 서류를 정리하고 있다. 근간 나라에서는 전기의 과다 소비로 공공업무의 장소에서는 밤이면 최소 전기사용만 허락했다.


 나는 불 꺼진 사무실에서 책상의 라이트만 켜 놓은 채 한 손엔 계산기를 두드리고 시선은 서류에 꽂힌 채 정리를 하고 있었다.


 밥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가져다줄게. 자네는 앉아서 그저 서류 정리만 하면 되는 거야.


 나는 서류 정리를 하다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왜 서류만 정리해야 하지?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싫어하는 것이 존재하겠지만 나에게는 이 서류가 세상에서 제일 소름 끼치는 존재다.


 그런데 왜? 나는 밥을 먹고 올 테다.


 의자에서 일어나려는데 다리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양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붙잡고 힘껏 밀어 올리려 하지만 전혀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봐, 밥은 내가 가져다줄 테니 자네는 그렇게 앉아서 서류만 정리하는 거야. 편하지 않나? 세상에서 서류만 정리하는 일이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게 아니라구.


 난 고개를 들어서 말소리가 나는 쪽을 봤다. 천장에 닿을 만큼 큰 서류 인간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위는 서류 인간만큼의 산더미 같은 서류가 빼곡하게 쌓여있고 그들은 줄을 서서 나의 정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서류 인간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