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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20. 2021

비는 소바와 티라미수를 타고 2

단편 소설



2.


 이곳은 나무가 무성했고 나무의 잎사귀 역시 크기가 굉장해서 태양의 이글거리는 열기가 앉아 있는 여기까지 확실하게 전해지지 않았다. 열기 팽창한 태양빛은 수많은 바늘이 되어 대지에 내려 꽂혔지만 나무가 탄생시킨 나뭇잎의 그늘은 질 좋은 방패가 되어서 잘 막아내 주었다. 그 때문인지 태양은 샘이 나서 더욱 힘 있게 타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다시 그녀의 말을 생각해 보았다. 그렇지만 티셔츠의 목 라운드 부분으로 자신의 가슴이 타인에게 보이는 것이 사소한 동작이라는 것에 나는 조금 놀랐다. 놀랐다기보다 뭐랄까 묘한 질투 같은 것을 느꼈다. 답이 없는 걸 알지만 누군가에게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답은 어디에도 없다는 말을 듣는 것을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 그녀를 좋아하는 것일까.      


 그것과는 별개로 반바지 사이로 나의 그것이 보이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지 않은가.


 어떤 남자가 자신의 여자 앞에서 그것이 보이는 것을 알고 다리를 들었다 내렸다 할까. 아니지 나의 여자라면 또 그럴 수 있다? 잘 모르겠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다.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는 있다.     


 그녀와 대화를 하면 의도하지 않는 방향의 생각들이 줄기를 타고 흘렀다. 왜 그런지는 나도 그리고 그녀도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비교적 작은 일에 웃고 울고를 반복해요. 어때요? 인간의 삶이란 어찌 보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지만 우리 스스로가 작은 것을 크게 키우지 않겠어요?” 역시 특징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영화 클래식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왜 불현듯 떠올랐을까. 나도 잘 알 수 없다. 역시 알 수 없는 것들은 전혀 알 수 없다. 그냥 떠오른 것이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문득문득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녀의 언어에는 그런 힘이 숨어 있었다. 떠오른 부분은, 준하가 베트남 전쟁에서 포탄이 터지는 바람에 눈이 멀어서 돌아와 주희를 만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김광석의 노래가 오버랩되었다. 그 노래는 시인 류근의 유언이었다. 그 유언에 김광석이 곡을 붙였다. 영화음악이란 참으로 대단하다. 영화의 주인공이나 그 배경은 생각이 나지 않더라도 영화음악이 어디선가 흘러나오면 아, 이 음악은 그 영화의 그런 부분이었지! 하게 된다.      


 대번에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 귓전에 맴돌면서 클래식의 내용이 주마등처럼 이쪽으로 저쪽으로 촤르르 흘러갔다.      


 “다리에 몰려드는 모기들을 전부 잡아서 프라이팬에 구워버린다면 어떨까요?” 그녀는 피로 얼룩진 손바닥에 짓눌러진 모기를 휴지에 닦으며 나에게 물었다. 나는 제때에 경험해보지 못한 일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든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답을 해줘야 했다.      


 머릿속으로 모기가 프라이팬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장면을 상상했다. 모기가 익어가는 상상은 4초 동안 진행되다가 사라졌다. 사라질 땐 촛불이 틱 꺼지듯 탁, 하며 꺼져버렸다. 머릿속에서는 제대로 형상화되지 않았다. 나는 모기 말고 메뚜기로 대신했다. 그랬더니 묘하게도 프라이팬에서 타닥타닥 튀겨지며 이미지가 떠올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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