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나를 활짝 웃게 만드는 것도 가족, 나를 크게 울리는 것도 가족이다. 가족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고, 가족을 맹신하는 사람도 있지만 가족은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고 더 불행하게 만든다. 가족은 나를 덜 행복하게 하거나 덜 불행하게 하지는 않는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그런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남매의 여름밤은 그렇게 남매의 기억 속에 추억으로 단단하게 자리 잡아 시간과 멀어질수록 생생하게 떠오를 것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이야기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늦었다며 잠을 깨운다, 지각이라는 불안감에 후다닥 일어나 가방을 메고 마당으로 나가니 밤인 것이다. 그렇게 여름밤, 아버지는 나를 놀렸다. 누구나에게 다 있을 법한 이야기, 여름밤의 선명한 기억은 박제가 된 채로 나이를 들어 버렸다.
영화 속에서 누나지만 아직 어린 옥주의 힘듦을 위로해 주는 말을 내뱉는 더 어린 동주.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동주가 누나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의 말은 고작 “라면 끓여줄까?”였다. 진정으로 괜찮냐고 물어봐 주는 건 가족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동주는 그저 친구가 좋고 노는 것이 좋은 어린이지만 누나 옥주와 싸우고 난 후 옥주가 소리 질러서 미안하다고 하니 "우리가 싸웠나?"라고 무심하게 말한다.
이런 장면은 나를 대입하게 된다. 나와 여동생도 어린 시절에는 이런 것으로 종종 싸우고 붙어있었다. 하지만 긴 시간을 돌아봤을 때 그건 너무나 미약하리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조카를 데리고 일 년에 몇 번 집에 오면 어린 시절의 앨범을 꺼내 들어 보며 그때를 웃으며 이야기한다. 옥주와 동주는 서로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지만 결국에는 모기장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같이 잠을 잔다. 남매가 여름밤을 같이 보내는 시간은 그리 몇 번 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의 연기가 연기가 아니라 너무 실제 같아서 보는 내내 옥주와 동주에게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창을 타고 들어온 그 여름의 햇살. 여름밤의 달빛. 할아버지가 듣던, 전축에서의 노래. 할아버지의 부재가 남긴 존재의 증명은 결국 옥주의 눈물을 터지게 만든다.
영화를 보는 동안 옥주와 동주의 가족을 보는데 이상하게 나의 유년시절 깨끗한 여름밤 기억을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죽지 않으면 따라다닐 어린 시절의 지독한 선명한 여름밤의 기억. 그 기억을 통해서 현재가 힘들지만 어떻게든 삶을 지탱하게 만드는 동력일지도 모른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남매인 옥주와 동주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아직 어린이의 마음을 가진 채 그만 미숙한 어른이 되어 버린 남매, 아빠와 고모인 병기와 미정의 여름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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