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에 빠져들었던
영화는 표층적으로는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지만 심층적 드라마적 요소가 강하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상실을 토닥여준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세진의 죽음을 부정하며 끝까지 소녀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파헤치는 현수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면서 현수가 가지고 있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슬픔, 어둠, 외로움, 무엇보다 다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에 나도 모르게 이입이 된다. 감당할 수 없는 일, 돌이킬 수 없는 일에서 자유롭고 싶지만 그 기억은 나를, 나의 정신은 잠이 들면 꿈속까지 찾아와 나를 옭아맨다. 그럴 때 나는 그만 세상과 잡고 있던 끈을 놓고 싶은 마음이 든다. 고개를 떨구고 흐느끼고 있을 때 누군가 나의 어깨를 잡아 준다. 그 손이 너무 따뜻해서 그만 소리 내어 울고 싶다. 고개를 들어 보니 그 사람은 나와 무관한 사람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흐르는 음악이 정말 좋다. 마지막 음악을 듣고 있으면 차분하게 이정은이 노정의에게 손을 내밀어 따뜻하게 잡아줬던 마음이 느껴지면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온다.
평범해 보이는 이 지루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죽기 살기로 버티고 있다. 누군가 행복해 보인다면 그 사람은 행복하지 않은 수많은 시간을 견뎌냈기 때문이다. 내가 죽을 만큼 힘들고 아무도 없다고 느낄 때 나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사람은 의외로 나와 비슷한 처지의 나를 모르는 타인인 경우가 있다.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말은 정말 죽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이렇게 살기 싫다는 말이다.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그건 그저 그렇게 흘러갔을 뿐이라고, 그러니 괜찮다고, 지금 잘하고 있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해주는 영화다. 그러니 처음에 영화에 속을 수 있다. 악착같이 살아내느라 제대로 상처를 받고 있는지도 모르는 우리에게 괜찮다고 손을 내미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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