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치의 맛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는 세월과 무관하게 아무 때나 봐도 빠져들어 아아 참 재미있구나, 하게 된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보고 나면 지금까지 봐온 수많은 영화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모든 감독들이 아마도 오즈의 영화 속에서 영감을 얻어서 테이크, 테이크 촬영을 한 것 같다. 오즈의 영화들 중에서 세 편을 소개한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 ‘안녕하세요’다. 나는 책과 영화를 추천하지 않는 편이다. 책 추천해달라는 말을 들으면 아주 난감해한다. 특히 소설을 벗어난 책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난처하고, 소설이라도 '해변의 카프카' 같은 소설을 추천할 수만은 없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책과 영화는 여자를 소개해주는 것처럼 망설이게 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주위에 추천하고 다니는데 일단 본 사람들은 아주 흡족해한다. 영화가 59년도 영화인데 어째서 그런 시대 같은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까. 컴퓨터와 휴대폰이 등장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걸 소거한 채 지금 시대에서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참 신기하다.
영화적 언어가 끊어지지 않고 장면 장면 이어지는 것 역시 신기하다. 나오는 모두가 주인공인데 특별히 더 주인공에 가까운 건 두 형제 꼬마들이다. 영화 속 어른들의 이야기가 슬며시 형제들의 장면으로 바뀌어도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영화는 도쿄의 중산층의 한마을 사람들의 아주 평범한 이야기를 오즈 야스지로의 언어로 풀어낸다. 하나의 소식을 한 사람을 거쳐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면서 베리에이션이 되면서 의심이 커져 간다. 그 장면 장면을 풀어내는 게 코믹에 가깝게 흘러간다. 그리고 두 주인공인 형제가 집에 티브이가 없어 티브이가 있는 옆집에 자꾸 놀러 가게 되고 엄마는 그 집에 가지 말라고 한다. 그 일로 엄마와 다투게 된다.
결국 형제는 엄마에게 폭발해서 이제 어른들과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도발한다. 이 과정에서 7살짜리 동생 이사무 짱의 초 귀여움이 화면을 뚫고 나온다. 어른들과는 말을 하지 않기로 한, 두 녀석은 학교에 가면서 옆집 아줌마들에게도 평소와 다르게 인사도 하지 않고 학교에 간다. 이상하다고 느낀 아줌마는 건너 건너 말을 전하면서 이사무 짱의 엄마를 또 의심한다. 자신을 싫어하는 걸 아이들에게까지 말해서 아이들이 나에게 인사도 하지 않는다며 화를 낸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는 꼬리를 물고 물고 하며 잔잔한 코믹으로 진행된다.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은 미장센이다. 중산층의 가옥이 아주 현대식이며 통일된 균형감의 안정된 구도를 보여준다. 30년대의 오즈의 마법사에서처럼 지금도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색감으로 영상을 채웠다. 영화에 마법을 부렸다. 이런 색감은 일본의 수많은 사진가들에 의해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는 것 같다. 컬러풀한 서랍장이며, 녹색의 주전자며, 세련된 등과 빨강과 노랑의 빨래, 지붕의 색채는 보는 내내 기분 좋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말은 주인공 꼬마들이 티브이 안 사주는 엄마에게 했던 말이다. 어른들의 인사는 정말 쓸데없는 것이다, 중요한 내용은 전혀 전달하지 못한 채 아침에 보면 그저 똑같이 안녕하세요, 날씨가 좋네요, 같은 말이나 하고 마음에 없는 소리나 할 뿐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생각해 보면 그런 어른끼리 하는 쓸데없는 인사 따위로 자동차를 팔아먹고, 사회의 윤활유가 된다.
이 영화에도 가장들이 정년퇴직 후 고민을 말한다. 이 영화가 오즈 야스지로의 스타일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 같다. 가족의 관계, 신세대와 구세대의 갈등, 직업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간극 그리고 인간과 인간이 모여서 살아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과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필요 이상으로 해야 하는 것들에 대 해서 생각하게 한다.
집에 반항하느라 동생과 함께 굶고 있다가 허기가 져 집에서 몰래 밥과 물을 가져 나와서 둑에 앉아서 형제는 밥을 먹는다. 형이 반찬이 없어서 밥만 먹으니 좀 그렇지?라고 하니 이사무 짱이 반찬을 가져온다며 일어나서 둑을 걸어가는데 저 앞에서 경찰이 오니까 덜컥 겁을 먹고 형에게 말해서 둘 다 그대로 도망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 나이의 형제의 입장과 마음과 생각을 너무 잘 표현했다.
이래서 너도나도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무 짱의 흥! 하는 제스처가 압도적이었던, 아주 사랑스러운 영화, 그래서 깨물고 싶은 영화 ‘안녕하세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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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흑백영화다. 오즈 야스지로의 ‘셋방살이의 기록’은 패망 후에 오즈가 만든 처음의 영화다. 일본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오래 전의 영화는 정말 빠져 들어서 보게 된다. 무엇보다 ‘잘 만들었다’라고 느끼게 된다. 박찬욱이 그토록 칭찬한 우리나라 ‘하녀‘를 보면 박찬욱이 왜 좋아하는가, 에 접근할 수 있다.
오즈 야스지로는 60년 정도 살다가 죽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영화를 55편 찍었다고 한다. 하지만 손실된 영화를 제외하고 남아있는 기록은 33편이다. 그래도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33편이나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오즈 야스지로의 여러 영화를 유튜브에 가면 풀영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유튜브 만세.
리메이크된 동경 가족을 좋아했다면 오즈 야스지로의 원작도 재미있게 봤을 것이다. 바람 속의 암탉, 만춘 등 몇 편을 봤는데 오즈 야스지로는 영화를 정말 잘 만드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셋방살이의 기록은 패망 후 어수선한 도쿄의 어디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무서운 얼굴을 한 아줌마 다네의 집에 고아로 보이는 고헤이가 들어오게 된다. 고헤이는 누군가를 따라와서 어디에도 맡아주지 않는 꼬마다. 모두가 어린이 같은 건 싫어하고 다 버리라고 한다. 주워온 남자가 다네 아줌마에게 하루만 맡아달라고 해서 재워주는데 그날 밤 오줌을 싸고 만다.
맡기 싫은 고헤이를 맡게 된 건 그전 날 잡화점 근처의 상인들이 모여 어린이 고헤이를 맡을 사람을 뽑기로 결정을 하는데 그만 다네 아줌마가 걸리고 만 것이다. 그 뽑기는 짜고 다네 아줌마가 걸리게끔 판을 짠 것이다. 재수가 없다고 느낀 다네는 하루 재워주자마자 이불에 오줌을 싼 고헤이를 무서운 얼굴로 나무란다.
그리고 저기 바닷가로 데리고 가서 버리고 오려는데 고헤이가 눈치를 채고 따라온다. 그러면서 어쩔 수 없이 같이 살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다네 아줌마가 그렇게 싫어하던 고헤이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1시간이 조금 넘는 분량에 다 집어넣었다.
고헤이는 벼룩 같은 것에 등을 이렇게 움찔거리는데 영화 말미에는 다네 아줌마 역시 벼룩에 옮아서 둘이 같이 등을 움찔거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다네 아줌마가 고아인 고헤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라 감동스럽다. 하지만 결국에는 고헤이의 아버지가 찾으러 와서 고헤이는 아버지를 따라가게 되고 다네는 그동안 몰랐던 자기 자신에 대해서 느끼면서 눈물을 쏟는다. 늘 무서운 얼굴의 다네 아줌마였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던 것이다.
다네 아줌마가 가족으로 받아들인 고헤이를 데리고 사진을 찍는 장면은 인상 깊다. 영화학도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추천한다. 패망하기 전의 영화 방식을 패망 후에도 자기만의 색깔로 고수하며 만들어낸다. 셋방살이의 기록 역시 인간의 관계, 사이, 가족 간의 거리를 오즈만의 방식으로 말한다. 오즈 야스지로 영화 몇 편을 보다 보면 다 다른데 다 통일된 흐름이 있고 다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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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트릴로지가 있듯 오즈 야스지로 삼부작으로 마지막 소개할 영화는 ‘꽁치의 맛’이다. 꽁치의 맛은 오즈 야스지로가 죽기 전에 만든 마지막 작품이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독신으로 살다가 죽은 오즈 자신의 모습을 오마주한 것이 아닐까 할 정도다.
이 영화도 오즈 야스지로 영화 특유의 감각이 돋보인다. 약간 위를 보는 듯한 다다미 촬영기법, 컬러풀한 미장센, 가족과 가족의 관계에 대한 고찰, 인간과 인간 사이의 설명할 수 없는 공백에 대해서 홈드라마식으로 잘 보여준다.
당시 아파트에 형형색색의 빨래가 널린 장면은 60년대 초라는 걸 여실히 무너트리며 누벨바그 장르를 여봐란듯이 보여준다. 오즈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남녀관계에 있어서 동등하다.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는 자체가 없다. 초로의 주인공 히라야마의 큰아들은 결혼해서 분가했다. 아들 먼저 퇴근하면 아내가 일하고 들어오기 전에 햄을 볶아서 오믈렛을 만들어 놓는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정년을 앞두고 있다. 일찍 아내를 잃고 분가한 큰아들 내외를 빼고 딸 미치코와 막내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히라야마의 마음속에 늘 돌처럼 꾹 누르는 것은 미치코를 마냥 옆에 두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받아들인다. 하지만 미치코 역시 일찍 시집을 가는 것에 회의적이다. 그 사이에서 소심한 방황을 하는 히라야마. 하지만 결심을 한 뒤로 미치코를 시집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히라야마 주위에는 다양한 삶이 포진해있다. 아내를 잃고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자신과 아직 부부가 오랫동안 같이 사는 친구가 있고, 먼저 잃은 아내를 빨리 잊고 착하고 예쁜, 젊은 여자와 재혼해서 행복해하는 또 다른 친구, 신혼이지만 신혼이라 사사건건 철없이 서로 다투고 삐지는 아들 내외, 딸이 시집을 가버리면 혼자서 외로워서 안 된다며 곁에 두고 있다가 그만 딸이 혼자서 중년의 여자가 되어버려 그것을 후회하는 어린 시절의 학교 선생님, 24살에 시집을 가면서 일을 그만둔 히라야마 회사의 여직원, 미치코가 마음에 둔 큰아들의 회사 남자 직원이 있는데 중간에서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다른 여자를 만나버린 큰아들의 후배, 그리고 자신을 돌봐주고 있는 미치코에 대한 자신의 시선.
이 모든 것이 주인공을 저물어 가는 일 년의 가을 끝에 매달린 꽁치와 비슷하게 보인다. 주인공이 마지막에 미치코를 시집보내고 집으로 들어와 어두운 식탁에서 아 외톨이구나,라고 되뇌며 꺼져가는 밤에 눈물을 훌쩍이는 모습은 아주 정적이며 단순하게 흐른다. 어떤 영화적 테크닉도 없는데 크나큰 울림을 준다. 아버지의 뒷모습은 늘 그렇구나, 이별이란 그렇구나, 결국 인간은 혼자인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장면은 아마도 오즈 야스지로의 마지막 심정을 영상으로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비틀비틀 물을 마시며 테이블에 앉는 그 모습이 아마도 인간의 마지막 힘을 주는 모습일 것이다. 제목이 ‘꽁치의 맛’인데 꽁치가 ‘추도어’다. 가을은 일 년 중에 저물어 가는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황혼의 빛을 낸다. 가을 꽁치의 맛은 처음에는 맛있지만 끝 맛은 끝물에 잡힌 꽁치가 씁쓸한 맛을 낸다. 꽁치를 그저 보는 것으로 맛을 알 수는 없다. 꽁치는 먹어봐야 맛을 알 수 있다. 먹기 전에는 꽁치의 맛이 쓴 지, 단지 알 수 없다. 인생은 살아봐야 알 수 있다. 인생이라는 맛이 쓴 지 단지에 대해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는 60년대에 만들었는데 지금 봐도 누구나 재미있어한다. 분명 무겁고 외로운 주제를 다루는데 오즈는 어슬렁 돌아다니며 동네를 구경하듯이 담아낸다. 그 속에 큭큭 나오는 웃음이 있고, 슬픔도 있다. 무엇보다 인간애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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