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부끄러운 일이 많은 생을 보내왔습니다,라고 쓰면서 마지막 장면을 수놓으며 끝이 난다. 인간 자격을 잃은 남자가 7년 전에 쓰고 싶었다는 소설이 쓰게 된 과정과 계기를 그리고 있는 이야기가 니나가와 미카의 화려한 색감으로 그려진 영화 인간실격.
니나가와 미카의 히로인 사와지리 에리카부터 미아자와 리에, 그리고 수영을 닮은 듯한 니카이도 후미가 다자이 오사무의 살아생전 만난 여인들을 표현한다. 니나가와 미카는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사진작가로, 사진으로 시작해서 광고, 영화감독까지 데뷔한 사람으로 앞서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555
술, 담배, 결핵, 여자로 짧은 삶을 보낸 다자이 오사무는 거의 인간쓰레기에 가깝다. 그렇기에, 너를 생각하면 괴롭다, 괴로운데 무섭지는 않다, 같은 허무와 죽음에 가까운 결락의 글을 써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사랑은 파괴 같은 것이다. 아름다우니 있어도 다른 것을 가진다는 것. 낡은 사상을 끄트머리부터 주저 없이 파괴해 가는 거침없는 영기에 놀라서 파괴 사상을 사랑하고, 파괴 사상으로 사랑을 갈취한다. 파괴는 불쌍하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다.
사양을 같이 펴 낸 오타 시즈코 역시 대담한 여성이다. 사랑은 좋은데 연예는 나쁜 것인가? 이해가 안 된다. 그런 애정은 모른다. 결혼해도 잘 모르지만 연애라면 잘 아는 여자. 괴로우면서 즐거워서 그런 연애가 나쁠 리 없는 오타 시즈코. 연애가 나쁜 거라면 저도 나쁠래요. 불량 이래도 좋아요. 애초에 전 불량이 좋은걸요, 라는 멋진 여성이었다.
그런 멋진 여성도 또 다른 사랑이 나타나면 던져 버리는 다자이 오사무에게 대드는 편집자에게, 다들 사랑스러워 품는데 무엇이 잘 못인가, 나는 그렇게 생겨 먹은 놈이다, 그러니 가려면 가거라.
객혈하는 가운데에도 끝없이 담배를 피우고 술을 찾고 여자를 품는다. 유명한 일화인 미시마 유키오가 찾아오는 장면도 영화 속에 나온다. 당신의 소설은 죽음을 쓴 연약한 소설일 뿐이라며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을 폄훼한다. 그때 다자이가 너도 나를 찾아온 걸 보면 나의 글이 좋아서 온 것이다, 라며 응수하는 일화는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문인들의 일화도 있다. 시인 이상과 소설가 김유정이다. 두 사람은 참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성격이지만 구인회 소속으로 둘이는 참 잘 어울렸다.
이상은 백석처럼 모던 보이에 투사 같은 사람이었지만 김유정은 유약하고 여린 감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으며, 몹시 가난한 데다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았다. 허무와 초현실의 이상의 글과 해학과 풍자로 가득한 김유정의 글로 보아서는 두 사람은 글로써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이상은 '희유의 투사, 김유정'을 쓰면서 김유정을 기분 좋게 표현했다.
두 사람의 일화가 있다. 1936년 가을 이상은 정릉의 한 암자에서 요양을 하고 있는 김유정을 찾았다. 이상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김유정을 찾았지만 본심은 따로 있었다. 더 말라버린 김유정을 보며 이상은 묻는다.
이상: 김 형, 각혈은 여전하십니까?
김유정: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이상: 신념을 빼앗긴 것은 건강이 없어진 것처럼 죽음의 꼬임을 받기 쉽더군요.
김유정: 김 형! 김 형!(김해경-이상의 본명)은 오늘에야 건강을 빼앗기셨습니까? 인제, 겨우 오늘에야 말입니까?
그러자 이상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김유정에게 제안을 한 다.
이상: 김 형! 김 형만 괜찮다면, 저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동반자살을 제안했다. 하지만 김유정은 그 제안을 거절한다. 자신은 내년에도 소설을 쓰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은 내일 동경으로 떠난다고 하고 김유정은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한 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였다.
내년에도 소설을 쓰겠다던 김유정은 돈이 없어 잘 먹지도 못한 채 삶을 마감하고 만다. 그해가 1937년 3월 29일이었다. 그리고 이십여 일 후인 4월 17일에 도쿄의 길을 걷던 중 김해경은 사망하고 만다. 이 둘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어떻든 영화는 니나가와 미카 덕분인지, 때문인지 너무 스타일리시하다. 니나가와 컬러가 이전의 영화처럼 화면을 가득 장식한다. 영화 속 다자이 오사무는 죽음도 장난처럼 여기고 죽음 앞에서는 소설과 같아진다. 2010년의 인간실격 영화는 소설을 영화로 옮겼었다. 그래서 요조가 주인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