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야기
니나가와 미카의 사진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색’이다. 그녀의 사진은 니나가와 컬러로 대표된다. 70년대에 태어난 그녀는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사물과 생물, 요컨대 꽃과 붕어 같은 피사체를 자신만의 독특한 색으로 담아냈다.
대체로(반드시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70년대에 태어나서 예술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은 범위가 넓고 깊은 것 같다.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다. 그들에게 예술은 모던함을 배경으로 하면서 트레디션을 고수하고 커스텀은 배제하고 있다. 이후 예술가들에게는 미래지향적인 모습들이 많지만 균형을 맞춰가는 모습은 70년대에 태어난 예술가들에게서 나타나는 모습들인 것 같다.
니나가와의 색 중에도 대표되는 색이 ‘빨강’이다. 붉은색과는 또 다르며 벌건 색에서 벗어난, 몹시 매혹적이며 선명하고 쨍하지만 모호한 빨강의 향연을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니나가와 컬러’라는 신조어가 탄생했고 그녀의 사진은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그녀의 사진은 몽환적이며 흔들림이 많고, 십육만 가지의 컬러 배합이 마치 고흐의 두텁한 색채처럼 묘하게 캔버스에 배분되어 있다.
니나가와의 사진은 어항 속의 붕어를 보는 것처럼, 바닷가에 앉아 바다를 보는 것처럼, 2층 카페의 창가에 앉아 길거리를 보는 것처럼 질리지 않는다.
니나가와 미카는 일본에서 여러 차례 사진으로 수상을 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그녀의 독특하고 강렬한 사진은 열광적인 마니아층을 만들어낸다. 니나가와는 더 나아가 자신의 ‘색’에 대한 분출을 사진에 국한시키지 않고 패션, 광고, 현대미술에까지 불어넣는다. 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정말 못하는 게 없는 그녀는 주체할 수 없는 끼와 재능으로 결국 영화까지 감독하게 된다.
그 영화가 2007년도에 나온 ‘사쿠란’이다. 인기 애니메이션을 니나가와는 자신의 스타일로 만들었다. 사쿠란을 보면 니나가와의 엄청난 색채가 영상미로 뿜어져 나온다. 사쿠란 속의 움직이는 색채에 눈을 뗄 수 없다.
사쿠란의 주인공으로 ‘츠즈야 안나’에 영화음악은 ‘시이나 링고’가 맡았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시이나 링고의 음악이 영화를 가득 채우고 니나가와식 빨강이 츠즈야 안나에 입혀져 2시간 동안 움직이는 미술작품을 보는 착각이 든다.
니나가와 미카의 사진은 평소 다니면서 많이 따라 할 수 있다. 니나가와식 사진을 찍어보는 것으로도 사진에 대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휴대전화기만 있으면 하나의 놀이로 사진의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니나가와 미카가 또 일을 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일화를 영화로 그려낸 '인간실격'이 그것이다.
부끄러운 일이 많은 생을 보내왔습니다,라고 쓰면서 마지막 장면을 수놓으며 끝이 난다. 인간 자격을 잃은 남자가 7년 전에 쓰고 싶었다는 소설이 쓰게 된 과정과 계기를 그리고 있는 이야기가 니나가와 미카의 화려한 색감으로 그려진 영화 인간실격.
니나가와 미카의 히로인 사와지리 에리카부터 미아자와 리에, 그리고 수영을 닮은 듯한 니카이도 후미가 다자이 오사무의 살아생전 만난 여인들을 표현한다. 니나가와 미카는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사진작가로, 사진으로 시작해서 광고, 영화감독까지 데뷔한 사람으로 앞서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술, 담배, 결핵, 여자로 짧은 삶을 보낸 다자이 오사무는 거의 인간쓰레기에 가깝다. 그렇기에, 너를 생각하면 괴롭다, 괴로운데 무섭지는 않다, 같은 허무와 죽음에 가까운 결락의 글을 써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사랑은 파괴 같은 것이다. 아름다우니 있어도 다른 것을 가진다는 것. 낡은 사상을 끄트머리부터 주저 없이 파괴해 가는 거침없는 영기에 놀라서 파괴 사상을 사랑하고, 파괴 사상으로 사랑을 갈취한다. 파괴는 불쌍하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다.
사양을 같이 펴 낸 오타 시즈코 역시 대담한 여성이다. 사랑은 좋은데 연예는 나쁜 것인가? 이해가 안 된다. 그런 애정은 모른다. 결혼해도 잘 모르지만 연애라면 잘 아는 여자. 괴로우면서 즐거워서 그런 연애가 나쁠 리 없는 오타 시즈코. 연애가 나쁜 거라면 저도 나쁠래요. 불량 이래도 좋아요. 애초에 전 불량이 좋은걸요, 라는 멋진 여성이었다.
그런 멋진 여성도 또 다른 사랑이 나타나면 던져 버리는 다자이 오사무에게 대드는 편집자에게, 다들 사랑스러워 품는데 무엇이 잘 못인가, 나는 그렇게 생겨 먹은 놈이다, 그러니 가려면 가거라.
객혈하는 가운데에도 끝없이 담배를 피우고 술을 찾고 여자를 품는다. 유명한 일화인 미시마 유키오가 찾아오는 장면도 영화 속에 나온다. 당신의 소설은 죽음을 쓴 연약한 소설일 뿐이라며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을 폄훼한다. 그때 다자이가 너도 나를 찾아온 걸 보면 나의 글이 좋아서 온 것이다, 라며 응수하는 일화는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문인들의 일화도 있다. 시인 이상과 소설가 김유정이다. 두 사람은 참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성격이지만 구인회 소속으로 둘이는 참 잘 어울렸다.
이상은 백석처럼 모던 보이에 투사 같은 사람이었지만 김유정은 유약하고 여린 감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으며, 몹시 가난한 데다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았다. 허무와 초현실의 이상의 글과 해학과 풍자로 가득한 김유정의 글로 보아서는 두 사람은 글로써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이상은 '희유의 투사, 김유정'을 쓰면서 김유정을 기분 좋게 표현했다.
두 사람의 일화가 있다. 1936년 가을 이상은 정릉의 한 암자에서 요양을 하고 있는 김유정을 찾았다. 이상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김유정을 찾았지만 본심은 따로 있었다. 더 말라버린 김유정을 보며 이상은 묻는다.
이상: 김 형, 각혈은 여전하십니까?
김유정: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이상: 신념을 빼앗긴 것은 건강이 없어진 것처럼 죽음의 꼬임을 받기 쉽더군요.
김유정: 김 형! 김 형!(김해경-이상의 본명)은 오늘에야 건강을 빼앗기셨습니까? 인제, 겨우 오늘에야 말입니까?
그러자 이상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김유정에게 제안을 한 다.
이상: 김 형! 김 형만 괜찮다면, 저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동반자살을 제안했다. 하지만 김유정은 그 제안을 거절한다. 자신은 내년에도 소설을 쓰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은 내일 동경으로 떠난다고 하고 김유정은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한 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였다.
내년에도 소설을 쓰겠다던 김유정은 돈이 없어 잘 먹지도 못한 채 삶을 마감하고 만다. 그해가 1937년 3월 29일이었다. 그리고 이십여 일 후인 4월 17일에 도쿄의 길을 걷던 중 김해경은 사망하고 만다. 이 둘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어떻든 영화는 니나가와 미카 덕분인지, 때문인지 너무 스타일리시하다. 니나가와 컬러가 이전의 영화처럼 화면을 가득 장식한다. 영화 속 다자이 오사무는 죽음도 장난처럼 여기고 죽음 앞에서는 소설과 같아진다. 2010년의 인간실격 영화는 소설을 영화로 옮겼었다. 그래서 요조가 주인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