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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26.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35

14장 6일째

435.


 “예, 꽤 오래전이지만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빗속에서 죽을 뻔했어요. 그때가 제가 군대에서 복무하던 시절이었는데 대단했죠.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구타가 밥 먹듯 이루어지는 군대생활도 대단한 것이었고 제가 경험한 비도 대단한 것이었어요. 그 빗속에서 저는 죽음을 경험할 뻔했어요. 빗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살아 나왔다고 하면 믿으실 겁니까?” 주인은 웃었다. “그때 내리던 그 비는 정말 기이하고 무서웠어요. 비가 마치 살아있다고 해야 할까요. 비는 산속의 흙을 모두 뚫어버려 산의 모습을 뒤바꾸려는 듯 보였어요. 비가 정말 사람을 죽여 버릴 듯 내렸습니다. 마치 지금의 비가 그때의 비를 떠올리게 하는군요.”


 “그 비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마동은 카페 주인이 경험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지금 같은 비가 내렸다는 건 그때에도 무엇인가 이 세계에 나오려고 했다는 말인가.라고 마동은 생각했다.


 “그러죠. 손님도 없고 더 이상 손님이 올 것 같지도 않고 말이죠. 비가 거세게 떨어지고 이야기할 분위기도 좋은데요”라며 카페 주인은 풍채에 맞게 웃었다. 역시 정이 가는 웃음이었다.


 “전 92년도까지 대평 군에서 헌병대대로 근무했습니다. 전 직업군인이었죠. 하사를 달고 당시에 중사 진급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부사관이라는 명칭보다 아직 하사 계급이 있었을 때였죠. 지금과는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요즘 입는 군복과도 많이 달랐고 군기는 엄청났고 구타도 많았습니다. 하긴 요즘도 구타가 없어졌다고는 하나 뉴스를 보면 예전보다 구타의 악랄함은 더 하고 짙어졌어요. 더 안 좋아진 것 같습니다.” 카페의 주인은 당시를 회상했다.


 “전 제대를 하기 전까지 후임들을 구타 해 본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전무후무한 군 출신일 겁니다. 누군가를 때린다는 게 싫었어요. 애당초 몸에 배어있지 않았습니다. 한데 막상 후임들이나 병사들은, 자신들이 잘못해도 기강이 흐트러져도 내가 때리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까 말을 듣지 않더군요. 군 생활에서는 아시겠지만 상황이 구타를 부르는 것입니다. 나는 구타를 외면했지만 주위 상황은 구타를 부추겼어요. 구타를 하면 기강이 바로잡히고 내무생활에 균형이 잡혀갑니다. 그땐 그럴 분위기였어요.” 카페 주인이 말을 멈추었을 때 마동의 표정은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무표정으로 바뀌었다. 카페의 주인이 하는 말에도 균형이 나왔다. 균형을 위해서는 불이익과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


 “그래도 전 구타를 하지 않았고 병사들의 훈련과 내무생활의 기강과 조화를 구타 없이 이루려고 많이 노력을 했습니다. 그땐 맞아서 머리가 터지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구타는 나의 군 생활에는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구타를 하지 않으니 내가 당직일 때 병사들은 마구잡이 생활을 했습니다. 내가 당직사관을 보는 날이면 점호가 끝나고 내무반에서 술을 마시며 몰래 라면을 끓여 먹고 졸다구들의 성기는 만지거나 괴롭히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일반 병들에게 구타가 필요했지만 구타 없이 어떻게든 이겨보려 했어요. 하지만 구타라는 것은 병균처럼 따라다녔습니다. 구타를 하기 시작하면 종양처럼 점점 부풀어 오릅니다. 종양이라는 게 깊게 파고들어서 결국 정신부터 몸을 전부 파괴시켜 버리거든요.


 전 용케도 구타를 외면했습니다. 덕분에 기강은 점점 형편없어져 갔죠. 내가 당직사관을 할 때에만 사고가 터졌습니다. 병들이 초소에서도 술을 몰래 들여와 마신다든가 초소에서 소변을 보거나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려 인원점검에 빵구를 내버려 본부의 검열에 걸린다든가 하는 사고가 내가 근무를 할 때에만 일어났습니다. 전 결국 대대장 실에 불려 가서 문초를 받았고 구타는 필요악이니 시도한다고 해서 군대의 기강이나 균형이 깨지는 것은 아니다, 적당한 구타는 필요하다,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 여러 번 불려 가서 들은 말입니다. 전 그때 마지막으로 불려 갔을 때 결심을 했죠. 직업적으로 군인은 나에게 맞지 않는구나. 중사 진급을 포기하고 이번에 전역하는 달이 오면 나는 이곳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통일된 녹색의 알록달록한 군복이나 군화도 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죠.


 남자들은 제복을 좋아하고 군복을 멋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전 아니었어요. 당시에는 지금처럼 덩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죠. 헌병대가 그렇듯 지금처럼 뚱뚱하면 그곳에 들어가서 훈련을 받을 수 없습니다. 헌병대라고 하지만 멋지기만 한 것은 아니었죠. 제가 속한 부대는 헌병대대 중에서 ‘특수임무대’라고 하는 부대인데 대테러 진압을 하는 역할도 도맡아 하는 부대였습니다. 훈련이 너무 고되고 힘들었습니다. 훈련이 고되고 힘들기 때문에 구타까지 해버리면 기강은 바로잡힐지 모르나 탈영의 위험도 있고 자실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 생각이 들었죠.” 카페의 주인은 커피 잔을 흔들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주인은 커피도 맛있게 만들었지만 맛있게 마시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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