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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07. 2021

비는 소바와 티라미수를 타고 17

단편 소설


17.

   부모님은 그런 나를 위해서 물약으로 된 멀미약을 먹이고 귀밑에도 붙이는 멀미약을 붙였지만 나는 소용이 없었다. 멀미약은 버스를 타고 얼마쯤 가면 그대로 기도를 통해서 다시 나왔다. 물약으로 된 멀미약이 올라올 때 그 맛은 정말 지옥의 맛이었다. 버스의 시야각이 좋은 앞자리에 좌석을 예매하여 이동을 했지만 나는 소용이 없었다. 고속버스의 뒤꽁무니에서 뿜어내는 연기의 냄새를 떠올리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참으로 기이해서 배를 타도 괜찮았다. 배의 롤링이 심해서 모든 이들이 바다의 물고기를 건져 올리듯 바다에 상체를 구부리고 토악질을 해도 나는 끄떡없었다. 그런데도 버스만 타면 비실비실해지며 멀미가 심했다.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이 밀려오는가 싶으면 그대로 토하고 말았다. 모든 버스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시내버스는 타고 있어도 멀미가 나지 않았다. 좌석의 배치가 시내버스와는 다르고 한 시간 이상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에서만 나는 심하게 멀미를 했다.

     

 수학여행의 날짜가 다가올수록 나는 다른 아이들 마냥 마음이 부푼 풍선 같지만은 않았다. 버스 안의  좌석 배치에 대해서도 미리 알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 여자아이가 앉아있는 좌석에서 좀 멀리 떨어져 앉아서 가고 싶었다. 그 여자애는 나에게 관심조차 없을지 몰라도 나는 멀미하는 모습을 그 여자애에게만은 들켜버리고 싶지 않았다.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날, 나는 수학여행을 가지 않았음 하는 마음을 부모님에게 내비쳤다. 그때 부모님은 싫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없는 집안 살림에 수학여행비를 낸 것을 아까워하는 눈치였다.   

  

 수학여행 당일,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학교에 나왔다. 겨울의 초입 아침은 차갑고 추웠다. 나는 운동장의 펜스에 앉아서 학교 운동장에 늘어서 있는 버스를 내려다보았다. 여러 개의 길쭉한 버스는 아코디언처럼 접었다 폈다 하는 아주 큰 애벌레처럼 보였다. 버스는 시동을 켜 놓지 않아서 운동장은 마치 거대한 박물관처럼 고요했다. 한두 시간 후에 그 버스는 아이들을 양껏 집어삼킨 후 허리를 접었다 폈다 하는 것을 반복하며 도로 위를 질주할 것이고 나는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고통스러운 멀미를 참다가 결국 구토를 할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파 왔다. 숨을 쉴 때마다 작고 모양새 없는 입안의 김이 새어 나왔다.    

  

 펜스에 앉아있는 내 어깨를 누군가 쥐었다. 묵직한 손의 힘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수위 아저씨가 웃고 있었다. 그는 나의 행색을 보더니 금세 수학여행에 임하는 학년인 것을 알고는 너무 좋아서 잠도 설치고 일찍 나왔구나, 라며 추우니 교실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펜스를 떠났다. 잠을 설친 것은 맞지만 좋아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수위 아저씨라니? 내가 알고 있기에는 학교에 수위 아저씨는 없었다. 기억의 저편을 아무리 재구성해봐도 그 작은 학교에 수위 아저씨라는 것은 없었다. 수위 아저씨가 하는 일은 학생들이 전부 다 했다. 고학년 아이들이 당직 선생님과 함께 일주일씩 돌아가며 학교 곳곳의 청소를 했고, 잡무며 저학년 아이들의 단속 같은 것을 했다. 입김이 좀 덜 나온다고 느껴질 무렵 참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운동장의 버스 주위에 참새들이 어딘가에서 우르르 내려와서 운동장 바닥에 주둥이를 박아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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