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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08. 2021

비는 소바와 티라미수를 타고 18

단편 소설


18.


 곧이어 아이들이 하나 둘 교문을 통해 학교로 들어왔고 15분쯤 지나자 등교하는 아이들로 인해 진공청소기 소리의 입구 같은 모습의 교문이 되었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6학년의 아이들은(그들도 나처럼 집 밖에서 일박은 처음인 듯) 버스 주위에 삼삼오오 모여들어 자신이 타고 갈 버스를 구경하느라 분주했다. 나는 그런 아이들과는 달리 펜스에 계속 앉아있었다.      


 밤새도록 한 고민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인원체크를 하고 각 반마다 버스에 올라타고 출발하려는 순간이 왔다. 나의 예상과는 달리 버스의 좌석은 앉고 싶은 대로 앉았다. 단, 여자아이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난 후 남자아이들이 올라탔고 그 후에 또 각자 자리를 바꾸든지 했다.      


 나는 앞자리 쪽에 앉아야 멀미가 조금은 덜 할 텐데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가 중간쯤에 앉아 버려서 나는 뒷자리로 가서 앉았다. 여자애의 앞쪽에서 토악질을 하면 그녀가 볼 것만 같았고 뒷자리에는 고개를 돌려야 하는 수고를 겪어야 하기 때문에 그녀보다 뒷자리에 앉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멀미 때문에 긴장을 하고 있어서 버스 밖의 풍경에 대해서 다른 아이들만큼 주의 깊게 보지 못했다.   

   

 아침부터 버스는 아이들을 싣고 달렸다. 몇 시간을 계속 달려서 점심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이름도 생경한 어느 곳에 정차를 하고 그곳에서 하얀 도시락을 줄 서서 하나씩 받아서 앉을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앉아서 먹었다. 나는 도시락을 받아 드는 순간까지 멀미를 하지 않은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어째서 멀미를 하지 않았을까.

 겨울에 버스를 타서 그럴까.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럴까.

 뒷자리가 오히려 멀미를 하지 않게 하는 것일까.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최신가요 때문일까.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지만 어느 것도 확실한 답에 도달할 수는 없었다. 아침을 먹지 못하고 버스 안에서 아이들이 게걸스럽게 과자와 빵을 먹으며 풍기는 냄새를 고스란히 맡으며 버스를 타고 오느라 배가 상당히 고팠다. 도시락을 까먹고 나면 분명히 버스를 타고 목적지까지 가기 전에 멀미를 하고 게워낼 것만 같았다.      


 나는 배가 무척이나 고픈 어린이였지만 조금은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볕이 따뜻한 바위에 앉아서 도시락을 손으로 들고 만지작 거리고 있으니 누군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 여자애였다. 나는 긴장을 하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도 아직 도시락을 펼치지 않고 있었다. 같이 먹자, 라는 그녀의 말에 나는 망설임 없이 도시락 뚜껑을 열고 해체하기 시작했다.      


 도시락은 종이 각으로 되어 있는 통에 새하얀 쌀밥이 들어있었고 계란말이 두 개와 무말랭이와 김과 김치가 고작이었다. 그녀는 내 옆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으면서 무슨 말인가를 꾸준하게 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역시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이 나는 것은 무척이나 하얀 쌀밥이 아주 고들고들했고 계란말이와 무말랭이가 이렇게나 맛있었구나, 하는 기억이 떠오를 뿐이었다. 분명 우리는 바위에 앉아서 점심시간이 다 지나가도록 도시락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대수롭진 않지만 교실의 커튼의 이야기, 사 분단 그 녀석의 이야기, 그리고 음악실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그 외에는 그녀와 나 사이에 도달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전무후무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이 끝이 나고 버스는 반나절 동안 경주를 돌며 아이들을 쏟아냈다가 다시 삼키고를 반복했다. 저녁이 되어서 숙소로 돌아가는 동안에도 나는 멀미를 하지 않았다.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처음 맛보는 그런 종류의 안정이었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경멸이 사라진 것이다. 자신감마저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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