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Apr 09. 2021

비는 소바와 티라미수를 타고 19

단편 소설


19.


 밤이 도래하니 아이들은 베개 싸움을 하여 베개를 전부 못쓰게 만들어서 숙소의 주인에게 선생님이 고개를 숙였고 여자아이들은 귀신 분장을 하여 화장실에서 나오던 뚱뚱하던 어떤 녀석이 기절을 하는 바람에 밑에 깔려있던 아이가 나 죽는다 소리를 질렀다. 자정이 다 되어서 아이들은 하나둘씩 버려진 짐 보따리 방의 구석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잠이 들었다.      


 나에게는 두 가지의 기쁨이 찾아왔고 희열도 느꼈다. 멀미를 하지 않았다는 것과 그녀와 점심을 같이 먹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멀미를 하지 않고 버스에서 아무렇지 않게 내렸을 때 마치 밤인데 밤 같지 않고 밝은 어떤 집요한 세계에 기분 좋게 발을 들인 기분이었다. 그녀와 함께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었다는 기쁨은 내 몸에 팽팽하게 자리를 잡았다. 자정이 넘었지만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경주의 초겨울 새벽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 정지된, 고요하고 조용한 시간이었다. 나는 숙소의 창문을 조금 열어보았다. 창밖의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이 아이들이 내뿜는 입김 가득한 방안으로 침투했다. 더운 공기와 차가운 바람이 만나서 난기류를 만들어서 아이들을 간지럽혔다.     


 이후 수학여행의 일정은 이랬다. 아침 일찍 해가 뜨기 전에 모두 일어나서 석굴암으로 버스를 타고 올라가서 해돋이를 보는 것이었다. 만약 겨울이 아니라 여름이나 다른 계절에 왔다면 해가 일찍 솟아오르니 아이들은 잠을 몇 시간 동안 못 자고 일정을 소화해야 하고 다음날은 전부 버스에서 잠만 자다가 집으로 올지 몰랐다. 그렇다고 이동하는 내내 버스에서 잠만 자다가 집으로 올 수는 없었다.      


 초겨울의 깊은 곳으로 와버린 시점에, 그러니까 한 겨울에 수학여행을 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겨울의 초입에 이박 삼일이 아니라 일박 이일의 일정을 잡은 것은 어쩌면 학교 측의 배려일지도 몰랐다. 나는 이불을 차 버린 아이들의 이불을 덮어주고는 아주 조금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겨울을 알리는 차가운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는 창문을 닫고 잠이 들었다.      


 해가 뜨지 않은 어두운 아침, 모두들 일찍 일어나서 좀비 같은 몰골로 버스에 올라탔다. 초겨울의 비가 떨어져 경주의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의자는 아직 차가워서 잠이 달아날 것 같았지만 아이들은 금세 병든 닭처럼 바닥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어둠에 장악되었고 비까지 내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불국사 근처에서 출발한 버스는 석굴암까지 어둡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타고 올라갔다. 나는 멀미가 날까 봐 긴장이 되어서 잠이 달아나 버렸다. 겨울의 비는 새벽의 하늘에서 내려와 우리가 타고 있는 버스의 창에 와서 개구지게 부딪혔다. 어둡지만 밖의 모습은 석굴암으로 올라갈수록 대지와는 멀어졌고 간간이 낭떠러지도 보였다. 아찔했고 이렇게 비가 오는데 해가 솟아오르는 모습은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불국사에서 석굴암으로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가파르고 구불구불했다. 학교 운동장의 저학년 아이들이 타는 구불구불한 미끄럼틀 백 개쯤 이어 붙여 놓은 것처럼 구부러져 있는 길을 버스는 올라갔다. 그때, 버스의 중간 즈음에서 우욱 하는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 선생님을 찾으며 구토가 나올 것 같다고 울부짖었다. 태권도를 잘하던 성혁이 녀석이었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비는 소바와 티라미수를 타고 1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