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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12. 2021

비는 소바와 티라미수를 타고 21

단편 소설

21.


 나는 왜 그런지 지금 옆의 그녀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이곳에서 한 번쯤은 해오름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십 년이 지난 후에는 우리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간단히 십 년이라고 말을 해버렸지만 십 년이 지나면 우리는 어른이 되고 만다. 태양은 저 모습 그대로 일 것이고 석굴암 주변의 바위도 나무도 돌도, 아마도 그대로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니 어쩐지 안 했던 멀미가 찾아오는 듯했다. 석굴암 주변의 바위와 나뭇가지는 비를 흠뻑 빨아들여서 생동감이 넘쳤다. 겨울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라는, 아직 겨울을 바라지 않는 자연처럼 가을의 끝을 더 가지고 싶어 하는 생동감으로 느껴졌다. 나는 주위를 돌아보고 다시 해오름을 보다가 옆에 앉아있는 그녀의 옆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아직 완전하게 자라지 않은 미숙한 모습이었지만 우뚝한 콧날 끝으로 태양의 빛이 떨어졌다.  

   

 나는 순간 그 빛을 만지려는 나를 발견하고 정신을 차렸다. “저기 말이야”라는 내 말에 그녀는 태양을 바라보던 시선을 나에게 돌렸다. 나는 그 찰나 십 년 후, 그녀의 모습이 잠깐 보였다. 눈가에 주름은 조금 졌지만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저기, 십 년 후에 말이야. 우리가 서로를 기억하고 있다면 이곳에서 해오름을 다시 볼 수 있을까?”라고 나는 말했다. 나는 몹시도 애어른같이 말을 해버렸다. 내 말에 그녀는 나를 보며 살며시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눈썹을 가리고 있던 내 앞머리를 쓸어 주었다. 나는 그만 발기를 해버렸다. 추운 날에도 그녀의 손길은 따뜻했다. 아마도 내 뜬금없는 발기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멀미를 잃어버린 대신에 발기를 얻은 것이다.     

 

 내려오는 버스에서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선생님은 혹시나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아이들이 멀미를 할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자신이 앉은 바로 뒷자리에 우리 둘을 앉혔고 사태를 대비했다. 대비? 그래 봐야 등을 두드리고 검은 봉지를 입에 대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전부 잠들었고 선생님 역시 꾸벅꾸벅 졸았다.      


 “난 말이야, 다시 태어난다면 이렇게 버스의 의자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 물론 거대한 사람이 앉으면 조금은 불편하겠지만 말이야. 그 정도의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어. 이렇게 버스의 좌석이 되어 전국을 누비며 그 아름다운 풍경을 죽을 때까지 보며 살아가고 싶어. 걱정도 없이 말이야”라며 그녀가 침묵에 작은 돌을 던졌다.


 “이렇게 의자가 많은데 어디쯤의 의자가 되고 싶어?” 나는 의자의 개수를 머릿속으로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응?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네. 만약에 의자가 된다면 말이야, 너도 옆의 의자가 되어줘.”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웃음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내 손을 꼭 잡아주었고 나는 졸음이 쏟아져 잠이 들었다. 그때 다른 손에는 불국사에서 파는 나무로 만들어진 긴 피리가 쥐어져 있었다. 그녀도 똑같은 피리가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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