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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13. 2021

비는 소바와 티라미수를 타고 22

단편 소설


22.

 거기까지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수학여행이었다. 그녀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그리고 그 나무로 만들어진 피리는 어디로 갔을까. 그런 물품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만다. 언제나 예고 없이 없어진다. 늘 집안 구석에 웅크리고 잘 있다가 어느 날 문득 자취를 감춰버린다.      


 나는 정확히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난 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에 불국사에서 며칠 동안 묵은 적이 있었다. 소위 동네에서 글을 조금 쓴다는 이유로 이곳저곳에 출품을 해봤지만 실패만 맛봤다. 내 글은 상당히 좋은데 알아봐 주지 않는다고 내 글에 도취되어 있었고, 나는 기고만장해 있었다.     


 어느 날, 리얼리티가 만연한 곳에 초현실적인, 해체성이 강한 나의 글이 먹혀들 리가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 큰 좌절감을 맛보았다. 그 해 겨울, 불국사를 오르다 옆으로 새는 바람에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쓰러져있던 나를 불국사 스님이 발견하고 절에 옮겼다. 나는 그곳(불국사에 딸린 사찰)에서 며칠을 묵었다. 스님에게 발견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어떻게 될지 몰랐다.      


 최소 동사로 인해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잘라냈을지도 모른다. 몸에서 추위가 물러나면서 나는 극심한 고통을 맛보았다. 그리고 고통이 서서히 물러나면서 나는 절의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갔다. 처음에는 고욕이었다. 그 추운 겨울에도 5시에는 일어나서 마당을 쓸어야 했다. 싸리 빗자루로 계속 쓸어도 쓸어도 눈이 쌓이고 또 쌓였다. 반복의 반복은 사람을 지치게 했다. 하지만 눈이 쌓이는 마당을 이를 악물고 땀이 나도록 쓸었다. 그랬더니 쳐다보기도 싫었던 절 밥이 맛이 있었다.      


 나는 앉아있는 자세부터 엉망이었다. 그 며칠 동안 나는 내 안에 있는 무엇인가를 조금 버렸다. 모든 것에 집착을 보이고 있었다. 집착을 버리고 나니 나는 나에게서 대단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중용에 관한 것이었다. 고요하고 사람이 없는 절이 이렇게 평온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며칠 불국사에서 지내면서 국민학교의 그녀와의 약속을 떠올리며 이틀을 석굴암에 올라 그녀를 기다렸다. 그때가 해가 바뀌는 1월 1일이었고 2일에도 올랐다. 혁명가 따위만 되지 않았다면 그녀는 예쁘게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아니, 혁명가가 되었다고 해도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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