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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17. 2021

비는 소바와 티라미수를 타고 26

단편 소설


26.


 “저는 현지인들과도 썩 친하게 지내지 못했어요. 그들은 나에게 살갑게 다가왔지만 내 안의 무엇인가가 자꾸 거리를 두고 밀어냈어요. 관계에 지쳐 일본으로 갔지만 벗어날 수 없었어요. 영영 이렇게 갇혀 벗어나지 못하게 될까 봐 무서웠어요. 점점 내가 아닌 다른 나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 생각의 끝은 언제나 발가벗고 눈을 뜨고 죽는 것에 도달해 있어서 너무 겁이 났어요.”     


 “하지만 또 다른 나는 일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날 때에 그 생활에 만족을 하며 생활을 하는 거예요. 내 거주의 랜드스케이프나 사운드스케이프를 만족하게 받아들이는 생활인 거죠. 그런 나날들이 지속되었어요. 누구나 매일을 견디다 보면 지쳐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내 속에 있는 어떤 ‘나’는 말이죠. 받아들임으로써 배척하게 되는 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어요. 아시겠어요?”     


 나는 알 것 같았다. 이건 진심이었다. 내가 불국사에 들어갔을 때에 그랬기 때문이다. 겨울의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것은 고욕과도 같았다. 해가 떨어지고 30촉 백열등이 소등하고 나면 내 눈에는 그저 암전의 모습뿐이었다. 그 흔한 라디오의 소리도 없고, 여성의 핸드백을 여는 소리도 없었다. 겨울이라 풀벌레의 흔적도 없었다.    

  

 그저 세계의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만 들렸다. 바람소리는 아팠고, 쓰리고 애달팠다. 딱히 집어서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바람소리는 내 마음의 어느 한 부분의 소리 같기도 했다. 잠도 오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 있어도 보이는 건 한 가지였다. 새벽에 내 몸은 이소룡의 샌드백이 된 마냥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힘겨웠다. 스님은 나에게 마당을 쓸게 했다.      


 눈이 내리는 동시에 마당을 쓸어봐야 무슨 소용인가.


 마당을 쓸지 않으면 밥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이틀을 꼬박 굶었다. 새벽의 마당을 쓸면서 나는 나 자신을 너무 꽉 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앎이라는 것을 어떻게 깨우치고 중용의 길을 알게 되었는지 수수께끼 같았다. 국과 고기와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버리고 새벽에 눈을 떠 내 몸을 고단하게 움직여 노동을 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하는 말의 희미한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을 하는지 그녀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와 난 불순물이 섞여버린 표층적 단편의 유사함이 흡수가 될 정도로 비슷한 점이 있었다. 나는 눈물이 나올 뻔했다. 그건 그녀가 만든 티라미수나 치킨 키예프를 먹고 나서 맛있어서 나오는 눈물과는 다른 성분의 눈물이었다.     


 “소바는 내 입안에서 계속 속삭여 주었어요. 살아야 한다고 말이죠. 넌 지극히 사랑스럽고 특별한 존재니까 너 자신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이에요. 그 누구도 해주지 않았던 말을 해줬어요. 인간은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살기 싫은 것뿐이라고 말이에요. 우습죠?”라며 그녀가 웃었다. 그녀의 미소를 보고 나도 따라 웃었다. 그녀의 웃음과 그녀의 사연과 지금의 비가 한데 어울렸다. 나는 곧 이를 악 물었다. 그녀를 따라 웃다가는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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