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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16. 2021

비는 소바와 티라미수를 타고 25

단편 소설

25.


 “친구는 이곳에 몇 번 와봤던지 소바를 먹으면서 시종일관 이야기를 쏟아냈지만 저는 소바를 먹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친구의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늦은 가을이었어요. 이제 겨울이 되면 이런 시원한 소바를 먹지 않겠구나,라고 생각이 든 내가 바보라고 느껴졌어요. 무슨 장작이 타는 소리가 들렸어요. 나는 소바를 먹다가 고개를 들어 소리를 듣는 시늉을 하니 친구가 이 소리는 비가 떨어지는 소리라고 하더군요. 비가 떨어져 지붕과 마당에 피어난 여러 나뭇잎에 부딪히는 소리라고 했어요. 아주 기이했어요. 이곳에서는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이렇게 들린다고 말이에요. 다른 레스토랑처럼 요란하게 음악을 틀어놓지 않아서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소바의 맛이 그렇게 훌륭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오늘처럼요.” 그녀는 비가 오는 대기 사이로 담배연기를 수증기처럼 뿜어댔다.      


 “티라미수는 언제 등장하지?” 내가 물었다. 지금껏 그녀의 이야기에 티라미수는 등장할 타임이라든가 시기라든가 장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의 언행으로 보아 뜬금없이 티라미수는 나타날 것이다. 나는 티라미수를 한 포크 떠서 입안에 넣었다. 장맛비가 내리는 여름의 중간에 파라솔을 드리우고 먹는 티라미수의 맛은 정말 눈에 튀어나올 만큼 맛있었다. 이렇게 여름 내내 앉아서 티라미수를 한 통씩 먹어댄다면 혈당이 올라 인체를 폭발시키고 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더라고 먹고 싶은 맛이었다.      


 “전 그곳의 소바를 먹고 토가쿠시소바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내가 지내는 곳의 소바 집들은 그런 맛을 내지 못했어요. 다른 집의 소바도 맛은 좋았어요. 하지만 토가쿠시의 소바를 맛본 나는 다른 소바는 입에 들어 들어오지 않았어요. 다른 곳의 소바도 맛있게 먹는 친구와는 달랐어요 나는. 친구 역시 토가쿠시의 소바를 좋아했지만 그 먼 곳까지 시간을 들여서 가야 하는 것에 회의적이었어요. 친구는 다른 곳의 소바도 잘 먹었어요. 하지만 전 그러질 못했어요. 어쩌면 단지 소바일 뿐인데 그곳의 소바를 먹는 순간 내 신체 안의 눈 감고 있던 복합성의 개체들이 전부 눈을 떠버린 것 같았어요.”     


 흠.      


 후우.


 그녀가 담배연기를 내뱉었고 반쯤 남은 담배는 빗물을 받은 종이컵 안에서 생명이 치익하며 다했다. 그리고 그녀는 비가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비를 몰고 다니는 비의 여왕 같았다. 같이 있으면 언제나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면 글이 잘 쓰여서 나는 좋았고 그녀는 그런 나를 바라보기를 좋아했고 비는 그런 우리를 위해서 지속적으로 지치지 않고 하늘에서 내려와 주었다.       


 “전 일본에서 아주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일을 했지만 실체가 없는 삶이었어요. 그런 인간관계가 가져오는 결락은 긴 터널을 세로로 세워놓은 다음 입구에서 사람을 발로 차서 넘어뜨리게 하는 거와 흡사했어요. 친구도 일 때문에 바빠서 저에게 신경을 잘 써주지 못했어요. 일본에서 한국인이 너무나 평온하게 잘 지내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특히 저처럼 폐쇄된 사람 에게는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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