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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19. 2021

비는 소바와 티라미수를 타고 27

단편 소설


27.


 “난 친구가 바빠서 못 가는 소바 집을 혼자서 가기로 했어요. 친구가 가는 길을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어요. 친구는 나에게 너무 미안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전 괜찮았어요. 친구는 일본에서 혼자서 외롭게 지내는 날 딱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친구가 너무 고마웠죠. 친구는 근처에도 맛있는 소바 집이 있는데,라고 했어요. 몇 번이나 친구와 이야기를 했지만 전 고집을 부렸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당신은 이해하죠? 이해하리라 믿어요.”


 그녀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다시 말을 이었다.      


 “전 시간을 내어서 전철을 타고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그곳을 찾아갔어요. 아주 추운 겨울의 가장 밑바닥이 세계에 깔려있는 몹시 추운 날이었어요. 내가 가는 길에는 눈이 내렸어요. 눈은 화산의 대처럼 하늘을 덮었어요. 토가쿠시의 소바 집이 있는 그곳에 도착하니 겨울의 눈은 비가 되어 내리고 있었어요. 여름의 비는 차가운 반면 겨울의 비는 그렇게 차갑다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나는 친구가 알려준 대로 잘 찾아갔어요. 친구와 와봤던 낯익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어요. 반가웠어요. 그 낯익은 풍경이 말이에요. 비에 젖어 있는 풍경이라 더 눈에 들어왔어요. 친구와 소바를 먹을 때에도 내렸거든요. 그러고 보니 지금도 비가 내리고 있어요. 당신과 낚시를 할 때에도 비가 내렸네요.” 거기까지 말을 하고 그녀는 날씬한 팔을 들어 파라솔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빗물을 손으로 느꼈다.     


 비는 그저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하나의 법칙을 정해 놓고 그 법칙에 맞게 하늘에서 밑으로 떨어졌다. 여름에 내리는 비라지만 겨울의 잿빛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와 흡사한 모습이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생기가 도는 비였는데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비는 정말 부자연스러웠다. 비가 자연의 일부로서가 아닌 하나의 완전한 독립된 개별적 존재로서의 비처럼 느껴졌다. 비는 완연한 독립된 군집으로 하늘에서 분리되어서 땅바닥에 떨어져, 오로지 비라고 불리는 물질만이 도달할 수 있는 코스로 흘러 들어가서 자신들의 이야기가 있는 세계를 만들어냈다. 내리는 비는 차갑지도, 그렇다고 따뜻하지도 않은 온도를 유지한 채 묘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아무리 쳐다봐도 어떠한 서정성도, 어떠한 이야기도 지금 내리는 빗속에는 깃들여 있지 않았다.      


 비는 그녀가 하는 이야기의 실체를 알고 있는 것일까.


 속이 텅 빈 동상 같은 모습으로 비는 우리의 세계에서 전혀 섞이려고 하지 않고 흘렀다.


“제 얘기가 재미가 없죠?”


 “아니야, 흥미로운 이야기야. 티라미수는 좀 체 나타날 것 같지 않지만 아주 흥미로운걸.”


 그녀는 손에 묻은 빗물을 닦지 않고 손가락 끝을 앉아있는 바닥으로 향하게 한 후 그대로 흘러내리게 했다.  

    

 “전 이제 혼자서도 찾아갈 수 있었어요. 그 소바 집이 있는 곳으로 들어서기 전에는 많은 소바 집이 있었지만 그 주변의 소바는 그 토가쿠시소바 맛을 내지 못한다고 친구가 말했어요. 멀리까지 와서 살아있는 느낌의 소바를 맛본 이후 그 맛을 다시 찾고 싶었어요. 산사 속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했어요. 그곳은 백 퍼센트 예약제라 전 오늘 예약을 하고 그곳 근처에서 하루를 지내고 다음 날 소바를 실컷 먹을 요량이었어요. 겨울의 산사 풍경 속에서 하루쯤 모든 것을 놓고 지낼 수 있기를 오랫동안 동경해 왔어요. 모든 것이 꿈을 꾸듯이 이루어졌어요.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는 탓에 오르막을 삼사십 분 걸어 올라가니 체온이 올랐어요. 허리를 굽히고 두 손을 무릎에 대고 숨을 한 번 토해 내고는 다시 걷는 행위를 반복해야 했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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