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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20. 2021

비는 소바와 티라미수를 타고 28

단편 소설

 

 28.


 “전 눈에 젖어서 추운 동시에 등에서는 땀이 서서히 맺히는 것을 느꼈어요. 다시 걸었어요. 오로지 머릿속에는 소바 생각뿐이었어요. 살면서 그렇게 무엇을 간절하게 원했던 적이 없었어요.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그렇게도 간절히 바랐던 것이 없었을까. 소바를 먹는 것이 간절한 것이라니. 하고 생각이 들었어요. 소바는 내 생각에 세상이 내놓은 어떤 무엇보다 위대하다고 말이죠. 그렇게 생각을 하며 소바 집으로 올라갔어요. 우습죠?” 그녀는 내가 미소를 짓고 있어서 그렇게 물었나 보다. 우습죠? 하며 말이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 나도 모르게 한일자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떨어지는 눈은 이내 비로 변했어요. 그리고 그 비는 차갑지 않았어요. 이상한 일이죠. 전 손바닥으로 빗물을 받았어요. 지금처럼 말이죠.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비는 왜인지 서글펐다구요. 겨울의 비는 차가워야 했어요. 비는 그대로의 비의 모습으로 서글펐어요. 벗어나거나 이탈하지 않았지만 서글펐는데 토가쿠시소바 집이 보였어요. 신사도 보였구요. 이 근처에서 하루를 묵을 거야, 그리고 많은 생각을 정리하고 걸 가야. 하며 속으로 생각을 하며 말이죠.”     


 그녀는 잠시 말을 끊었다.


 “어떤 일이 있었군.” 내가 말했다.


 “어떤 일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녀가 물었다.       


 잠시의 침묵.  

    

 “소바 집, 주인이 죽어버렸어요. 그래서 소바 집은 문이 굳건히 닫혀 있었어요. 전 내면의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 내려버리는 줄 알았어요. 누군가 소바를 먹지 못해 주저앉아 버렸다는 내. 말을 듣는다면 나를 미친 사람처럼 보겠지만 전 상관없었어요. 전 비를 맞으며 소바 집 앞에 앉았어요. 비에 젖는다는 생각도, 내 안의 소바에 대한 갈망도 그 어떤 것도 같이 죽어 버렸어요. 몸의 열기가 식어감에 따라 몸이 차가워지기 시작했어요. 한데 그것 따위 중요하지 않았어요. 전 그날 소바 집 앞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앉아있었어요. 비를 맞으며.”     


 그녀의 말이 끊어지자 빗소리만이 경쾌하게 들렸다. 나는 티라미수를 계속 집어먹고 있었다.


 “왜 닫힌 소바 집 앞에서 티라미수를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언제나 그렇지만 수수께끼 투성인 게 인간이에요. 당신은 잘 알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어째서, 난데없이 소바에서 티라미수로 바뀌어 버렸는지 말이에요. 내 속에 있는 다원화의 복잡함이 촉을 그쪽으로 세웠나 봐요. 어떠한 정신세계의 매듭이 티라미수를 경계로 이끌어 냈는지 모르겠어요. 티라미수는 신들의 음식이니까요.”


 나를 보며 웃었다. 웃음 속에는 평소에 볼 수 없는 그녀의 또 다른 모습이 있었다. 그녀는 서른한 가지의 웃음을 지니고 있었다.      


 “저 당신에게 부탁이 있어요.”


 “뭐지?”


 “나의 이런 이야기를 소설로 적어 주지 않을래요?”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적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을까.


 “난 소설을 적는 재주가 없어. 당신의 이야기는 좀 더 글을 소설가답게 쓸 수 있는 작가가 적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아니에요. 당신이 적어주면 돼요. 당신이면 충분해요. 그리고 당신만이 가능해요.”


 어째서,라고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수수께끼 투성이니까요”라며 그녀가 또 한 번 미소를 얼굴에 만들었다.      


 그녀가 의자에 앉아서 몸을 흔들 때마다 그녀의 가슴이 그녀의 작은 티셔츠 안에서 춤을 추었다. 내 시선이 그쪽으로 내려갔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의 이야기가 끝남과 동시에 내리는 비는 독립적이지 않는 자연의 하나로 서정성을 듬뿍 담고서 하늘에서 떨어졌다. 거짓말처럼.      


 지금의 시간이, 비가 내리는 이 계절의 시간이, 그녀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오랫동안 입어서 질이 잘 들여진 몸에 딱 맞는 정장 같았다. 그런 편안한 정장 같은 시간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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