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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13.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52

15장 6일째 저녁

452.


 해무의 자줏빛은 더욱 검고 기분 나쁘게 변하였다. 검은 자줏빛을 보고 변한 기분은 여러 색이 혼합된 탁한 물감처럼 짙어졌다. 혼탁한 채색이었고 어두운 짙음은 무게를 한층 더 무겁게 만들었고 해무는 더욱 엄격한 얼굴을 하고 인간의 세계를 덮으려 하고 있었다. 섬뜩한 두려움 속에 마동은 서 있었다.


 상상 너머의 맑은 바닷속에 있는 두려움, 능력이라고 불리는 것이 전혀 발휘되지 못하는 두려움이 마음 깊은 곳에 꽉꽉 들어차버렸다. 무섭다고 입 밖으로 내뱉을 수도 없었다. 어둠을 뚫고 나오는 또 다른 어둠이 해무 속에 가득했다. 지금 마동은 그 속에 홀로 서 있었다. 어떠한 정의로도 단정 지을 수 없는 해무가 다가올수록 옅은 비는 다시 굵어졌다. 오늘은 소피가 프로모션으로 인해 한국으로 들어오는 날이다.


 이런 날씨 속에서 소피는 한국으로 잘 오고 있을까.


 소피는 미국에서 직항으로 한국으로 오지 못하고 몇 군데의 나라를 경유해서 한국으로 오는 모양이었다. 왜 그런지 이유는 알지 못했다. 경유한 나라의 공항에서 소피의 메시지가 들어왔다. 아시아에서 유독 한국은 보수적인 경향의 시각이 많아서 계약에서의 문제가 발생하여 착오가 많았다는 이야기가 메시지에 있었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성인 여배우만 70여 명이 있고 그들의 이동에 초도의 물량도 같이 이동을 해야 한다는 어려움의 이야기도 들어와 있었다. 소피는 마동에게 딜도를 하나 선물하겠다고 했다. 여자 친구에게 선물로 전해주라는 메시지도 들어와 있었다.


 맙소사.


 마동은 작은 편지와 통장이 소피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고 부담을 가지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방파제에 나오기 전에 잠을 자고 밥을 먹었던 집의 거실을 둘러보았다. 마동이 있었을 때의 거실 공간은, 마동이 없어져버리고 난 후의 거실의 공간도 그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대로일 것이다.


 남겨진 내 관념의 흔적들은 거실의 공간에 얼마 동안 남아있을까. 누군가가 이 집에 들어온다면 그 이전에 살던 사람에 대해서 조금은 궁금해할까.


 마동은 주거지를 훼손시키면서 살아가는 인간은 아니기에 마동이 떠나고 이후에 집에 들어온 사람들이 이전에 살던 사람에 대해서 나쁘다는 생각은 가지지 않을 것이다. 마동은 자신이 사라지고 나면 는개가 이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의 체취를 그녀가 조금 더 기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마동은 이내 고개를 힘 있게 흔들었다.


 하지만 는개가 나에게 얽매여 있는 것도 썩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런 것을 길게 생각하고 있자니 마음의 상실이 지구 핵에 닿을 만큼의 깊이를 만들어냈다. 마동은 또다시 그녀를 생각했다는 자책감에 고개를 흔들었다. 자꾸 는개를 생각하면 안 된다. 그녀를 떠올릴수록 마음의 결락만 커져갔고 그러다가 마동 자신도 모르게 등을 돌려 인간의 세계로 들어가서 혼한(昏漢)이 될지도 모른다.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그렇지만 이제 와서 방법에 대해서 좋고 나쁘고를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어둠의 도트의 움직임이 미궁처럼 유동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마음속에서 물수제비처럼 번져갔다. 어둠의 도트가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마음속 그녀의 작은 마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는개의 마음은 약했고 온전하게 가질 수도 닿을 수도 없는 아주 먼 곳에 있었다. 그녀의 작은 마음은 구름처럼, 물처럼 언제나 그곳에 있을 것만 같았지만 어둠의 도트가 세력을 확장해감에 따라 만지면 없어지고 다가가면 멀어지는 그런 회색빛 토성으로 변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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