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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14.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53

15장 6일째 저녁

453.


 졸음이 몰려왔다. 하필 이런 때에.


 이제 도트의 세력이 마동을 완전하게 제압하려 했다.


 막상 정리를 하고 보니 가진 것이 너무 없었다. 주머니 속에는 휴대전화기가 들어있을 뿐 동전도 하나 없었고 지폐도 한 장 없었다. 잃을 게 없으니 정리를 하는 것에 용감해질 수 있었다. 마음의 정리든 현실적인 정리든, 정리는 빠르면 좋다. 빨리 정리해버리고 나면 이후에는 어떻게든 질서가 유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리가 안 되는 하나가 있었다. 마동은 우산대를 어깨에 걸치고 바다와 하늘이 경계선을 바라보았다.


 “는개가 보고 싶다”라고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말을 해버렸다. 마동은 그런 자신이 조금 우스웠다. 입 밖으로 그녀의 이름을 내뱉고 나니 입가에 미소가 일었다. 해무가 만들어낸 어두운 자줏빛은 더욱 세력이 확대되었고 내리는 비에서는 코를 막아야 할 것 같은 냄새를 풍기며 구름에서 떨어졌다.


 “저 여기 있잖아요”라는 말에 마동은 뒤를 돌아보았다. 는개가 방파제에 와있었다. 마동은 조금 놀란 눈을 하고 는개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빨간 우산을 쓰고 여름용 레인코트를 여민 채 초승달 모양의 입술을 하고 마동을 보고 있었다.


 “당신에게서 ‘보고 싶다’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너무 좋은걸요. 거 봐요, 당신도 표현을 하면서 살아가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죠? 이전 너무 늦었나요?” 는개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는개가 하는 말에는 설핏 슬픔이 보였다. 그녀는 마동이 서 있는 테트라포드로 올라섰다. 하이힐을 신고 올라서기에는 위험했다. 테트라포드는 그 사이사이에 구멍이 크레바스처럼 잔존하여 자칫 발을 헛디디면 미끄러져 테트라포드 사이로 빠져서 나오지 못하게 된다. 아찔하게 올라선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마동이 있는 곳까지 왔다.


 회사에서 바로 왔을 모양이었다. 검은색의 타이트한 치마에 블라우스를 입고 그 위에 블루레인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그녀는 회사에서 묶었던 포니테일의 머리를 풀었다. 머리를 묶어두었던 자리에는 표시가 났지만 그것대로 자연스럽게 보였다. 잔잔한 비바람에 흩날리는 그녀의 머리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이 생각날 만큼 아련했다. 무슨 영화인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명작 영화의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그녀가 신고 있는 힐은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녀가 이곳에 오는 순간 그녀의 하이힐과 테트라포드는 집요하게 들어맞는 그림이 되었다. 아슬아슬한 하이힐을 신고 그녀는 한발 한발 마동이 서 있는 곳까지 다가와서 마주 보고 섰다. 마동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계속 쳐다보았다.


 “어떻게?” 마동은 놀라서 읊조리듯 말했다.


 “당신이 여기에 있을 줄 알았어요. 저 당신이 있는 곳은 이제 다 알 수가 있어요.” 는개가 웃었다. 그녀의 웃음은 대기의 상황과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녀의 미소는 환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녀가 웃음으로 마동을 마주 대하니 자줏빛 해무가 이곳으로 다가오는 속도가 더뎌졌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당신의 마음을 읽었다고 하면 믿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제가 어떻게 여기에 당신을 찾아왔겠어요?” 그녀는 계속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어두운 상황 속에서 그녀의 미소는 빛처럼 지금 상황에 대응하고 있었다. 다시는 는개의 웃음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는 그녀의 웃음은 바람의 끝에서 불어오는 웃음이었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고 따라 할 수 없는 웃음이다. 봄날의 제비가 날아와서 처마 밑에 둥지를 틀 듯 미소는 그녀의 얼굴에 내려앉은 채 도망가지 않고 계속 머물러있었다.


 “마음을 읽는 능력까지 지니고 있는지 몰랐어. 언제부터 그런 능력이 있었던 거지?"


 “몰랐군요. 당신은 알거라 생각했는데.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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