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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15.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54

15장 6일째 저녁

454.


 “정말?”


 “설마요”라며 는개는 마동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작고 부드럽고 차가웠다. 마동은 는개의 손을 꼭 쥐었다. 그녀의 손을 꼭 쥘 때마다 그녀는 무언의 표정으로 기쁨의 미소를 만들었다.


 “당신이 정리하고자 했던 일들은 잘 마무리 지어질 거예요. 소피에게도 당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대로 그녀가 부담을 가지지 않게 잘 전달이 될 거예요. 그러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어머니에 관한 것도 그리고 당신의 집과 나머지 정리도 모두 깔끔하게 끝이 날 거예요.” 그녀도 마동이 바라보는 바다 쪽을 보며 나란히 섰다. 는개는 우산을 접어서 테트라포드에 놓아두었고 “당신은 이렇게 나란히 있는 걸 좋아하죠?” 라며 마동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그녀만의 향이 이 몹쓸 날씨를 뚫고 번졌다.


 “그런데 그 말은 나와 함께 있겠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마동은 옆에 있는 는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럼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당신이 남으려고 하지 않아서 저도 결정을 해야 했어요. 물론 고민이 심했어요. 그건 사실이죠. 전 이곳 생활도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고 있는 축에 속하는 인간이니까요. 이거 당신 말투죠?(웃음) 하지만 당신을 택했어요. 왜 그런 선택을 했냐고 묻지 말아 주세요. 인간은 수많은 선택 속에서 하나를 택해야 하고 선택을 당하면서 마무리하는 거니까요. 전 당신과 함께, 당신 옆에 있을 거라구요. 이제 당신 뒤에서 당신의 뒷모습만 바라보는 짓은 하지 않겠어요. 회사에서도 이미 사표를 냈어요. 사장님은 골머리를 앓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는개의 말에 방파제에 침묵이 흘렀다. 침묵은 저 먼 하늘처럼 찐득하고 거무스름했다. 진흙처럼 물기 없는 침묵은 두 사람의 주위를 에워쌌다. 끈적끈적하고 무거운 침묵을 깨트려 보려고 했지만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마동은 잠시 회사의 상황을 떠올려보았다.


 자신을 포함한다면 회사 내부는 가장 믿을만한 세 사람을 잃었다. 시간이 지나면 빈자리가 메꿔지겠지만 그전까지는 골치가 아픈 일들이 매복하고 있다가 튀어나올 것이다. 마동이 맡아서 하던 일과 는개가 하던 일을 인수인계받아서 실무과정에 들어가는 시간만 해도 몇 개월이나 걸린다. 교육을 받고 실전 업무에 바로 투입이 되었다고 해도 일을 척척 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무를 능숙하게 처리하는 건 오로지 경험과 시간을 들여서 재능을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클라이언트에게 꿈의 리모델링을 전달해야만 한다. 꿈의 리모델링은 꿈을 맡긴 사람과 그 꿈을 맡을 사람과의 신뢰가 형성이 되어야만 비로소 꿈의 채취가 가능했고 리모델링의 작업이 순조로운 것이다.


 신뢰라는 건 단시간에 만들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신뢰를 통해서 작업자와 클라이언트 사이의 결여된 부분들의 이음새를 맞춰갈 수 있는 것이다. 오선지와 음표는 신뢰를 통해 이루어져 있다. 오선지의 음표가 규칙적으로 나열되어 있다가도 우연히 하나가 이탈해버리고 나면 촉이 엉클어지고 음은 엉망이 되어 버리는 음계처럼 회사는 단조로운 반복이 진행되어야 하지만 시스템 하나가 틀어지고 나면 꼬이게 되고 만다. 그렇게 한 번 무너진 신뢰는 다시 회복하기가 힘들었다.


 빗방울이 다시 굵어지더니 거세게 내렸다. 굵어진 빗방울은 바다에 떨어져 수천 개의 음표를 만들어냈다. 굵어진 빗방울은 누린내를 동반했다. 코를 막아야 할 만큼 누린내는 심하게 방파제에 퍼졌다. 는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마동은 움직임 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옆으로 보이는 는개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 속은 완연히 다른 세계가 도래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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