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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16.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55

15장 6일째 저녁

455.


 “이것 봐, 는개는 이곳에 오는 게 아니었어.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좋아.” 잠시 틈을 두었다. 그 틈을 이용해 그녀는 마동의 손을 꼭 잡았다.


 “난 이제 곧 어떤 문을 통과할 거야. 문을 통과할 거라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는 아주 많은 문이 존재해있어. 나는 매일 몇 개의 문을 통과하며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지. 저 문을 통과하면 오늘은 어떤 변화된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며 작은 설렘과 조바심이 내 마음의 옅은 부분에 자리 잡고 있었어.” 마동은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가며 말했다. 그녀는 마동의 마음을 아는지 손을 더욱 꼭 쥐었다. 는개의 부드러움이 전해졌다.


 “거실과 복도 사이에 있는 둔탁한, 유리가 없는 아파트 복도 문을 지나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유리로 되어있는 아파트 현관문을 거쳐 썩 내키지 않는 색의 자동차 문을 열고 닫으며 건물의 두꺼운(1센티미터가 넘는) 2중 유리문을 두 개나 지나 통과하여 일하는 사무실의 철제 플라스틱 문을 열고 들어와 책상에서 일을 하기까지 매일매일 온도와 환경이 다른 두 공간을 지나친다는 알 수 없는 작은 기대가 내 삶의 조그마한 부분을 차지했어.” 마동은 말을 하면서도 졸음에 힘겨워했다.


 좋음이 이렇게나 쏟아지다니.


 “문은 정말 특수성을 띠고 있다고 생각을 해. 내가 뇌 생리학을 전공한 건 아니지만 뇌 생리학적으로 문이 없다고 가정을 하면 분명 인간은 불안함에 몸이 떨리겠지. 심장이 뛰고 잘 걷지도 못할 거야. 문은 그런 특수성을 지니는 거야. 우리는 보통 문이라는 특수성을 지닌 물체에 대해서 조금은 성의 있게 다가갈 필요가 있어.” 마동의 말이 끊어지자 그녀가 마동의 팔에 팔짱을 끼고 팔에 힘을 주었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


 “좀 더 가까이서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는개가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어둠의 도트가 어떠한 방향으로 움직이려는지 몰라도 꿈틀거림이 많아 느껴졌다. 마동은 쏟아지는 졸음을 떨쳐 내 가며 이야기를 했다.


 “어쩌면 인간은 좀 더 튼튼하고 안전한 문이라는 관념 속에 갇혀서 상주하기를 늘 원하고 있어. 만약 자동차의 문이 없다고 가정을 한다면 정말 끔찍하지.” 마동의 말이 공감이 간다는 듯 는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없는 자동차 안에서 그렇게 마음 놓고 담배를 피워 대며 운전을 할 수 있을까. 안전벨트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까. 우리가 은행에서 밖으로 나올 때 이 문으로 나갈까 저 문으로 나갈까 하며 고민하는 부분은 한가한 일요일에 마트에서 녹차가루를 고르는데 이 물품을 고를까, 저 물품을 고를까 하는 식의 고민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띠는 거라구. 어떤 문으로 통과할까, 하는 고민은 마트에서의 고민처럼 혼란스럽지가 않다는 거야,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라구.”


 마동은 잠시 어두운 자줏빛이 강한 해무를 노려보았다. 마동이 노려보아도 해무는 정중하게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빗방울은 계속 거세게 내렸고 누린내는 바다 위를 점령했다. 곧 목 없는 사람들이 해변에 속속 나타날 것이다. 마동은 자신이 들어서려고 하는 문으로 목 없는 사람들에게 인도받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이 문이라는 것이 통과를 하면 마음이 놓이는 문과 기이하지만 그렇지 못한 문이 있어. 그래서 문이라고 하는 것은 이상하리만치 밋밋한 그 무엇인가가 확실하게 존재해있어.” 졸음이 누린내만큼 거세게 몰려왔다.


 “그건 당신만의 생각이죠?” 그녀가 조용하게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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