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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17.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56

15장 6일째 저녁

456.


 “그래, 분명 나만의 생각일 거야. 분명해. 어떨 땐 말이지 열었다가 닫히는 문을, 그러니까 반드시 닫아야 하는 문을 열어놓고 그냥 지나친 것에 작은 희열과 묘한 뿌듯함마저 들기까지 한 경우도 있었어. 아주 미묘한 차이야. 지금도 문을 만드는 여러 공장에서는 좀 더 튼튼하고 안전하고 눈을 사로잡아 끌만한 문형으로 만들어진 문을 만들어내느라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을 거야. 모르는 이들이지만 새삼 그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마동의 말에 는개는 흐응 하는 소리를 냈다. 단지 그렇게 들렸다. 마동은 그녀가 호응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우리가 다니는 지극히 평범한 문은 앞으로는 좀 더 특수성을 지녀야 한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야. 그런데 말이야.” 마동은 잠시 침묵을 만들었다. 는개는 마동의 옆으로 더욱 다가와서 붙었다. 그녀의 가슴이 마동의 팔에 닿았다. 생명의 온기를 그녀의 뛰는 가슴을 통해 마동은 느끼고 있었다. 는개가 전달하는 생명의 온기는 마동의 의식의 경계선을 넘어 무의식의 세계에까지 뻗어있었다. 마동의 심연을 두드리는, 미미하고 멀리 있는 는개의 작은 마음은 눈을 뜨고 마동의 무의식의 세계에 접합하려고 했다. 마동은 그것을 막아야 했다. 마동의 마음속에는 어둠의 도트와 그녀의 작은 마음, 두 개의 대립이 마주하고 서로를 바라보는 형국을 만들고 있었다. 어느 한쪽이 잡혀 먹히게 된다.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졸음이 지금 내리는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런데 말이지. 지금 내가 통과하려는 문은 지금까지 내가 말한 문이라고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이야. 안과 밖의 개념적인 문이 아니란 말이야.”


 졸음이 몸을 잠식하려 했다.


 “내가 지금 통과하려는 문은 상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이야. 저 문을 통과하고서 아, 여기가 아니군. 하며 다시 돌아 나올 수 있는 그런 문이 아니야. 은행의 문도 아니고 마트의 문도 아니지. 내가 지금 통과하려는 문은 의식적으로 하나의 완전한 체재를 이룬 문이야. 마치 살아있는 고래의 입처럼 꿈틀거리는 문이라구. 저 문으로 들어가고 나면 문은 자의식이 강해서 입을 다물어 버리고 또 다른 통로의 문을 만들어 버릴 거야. 실제로 문이라고 말하기에도 어색한 그런 곳을 지금 난 통과하려고 해. 그런 곳에 는개를 데려갈 수는 없어.” 마동은 조금 완고하게 말했다.


 졸. 음. 이. 쏟. 아. 졌. 다.


 엄청난 파도 같은 졸음이 마동을 습격했다. 이대로라면 아무 곳에서 엎어져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동안 못 잤던 잠이 한꺼번에 폭력적으로 마구 다가왔다.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는 구부러진 바다의 블랙홀에 순식간에 빠져 들어가듯 졸음이 마동의 뇌를 습격했다.


 “제가 지금의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된 계기는 당신에게 있었어요. 지난번에 말한 것처럼. 당신 때문에 이 회사에서 지금까지 견딜 수 있었어요. 당신은 저와 어떠한 무엇인가로 연결되어 있어요. 연결된 무엇인가는 서서히 타오르는 작은 촛불 같다고 해야 할까요. 촛불이란 그렇잖아요. 집에 정전이 되면 작은 촛불이지만 방 한가득 빛을 뿜어내니 말이에요. 거실의 전등 불빛 밑에서는 보잘것없던 불빛이 말이에요. 그런 촛불 같은 빛이 우리에겐 연결되어있다고 믿고 있어요. 당신은 행운이에요. 저를 만났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그동안 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더군요. 그래도 전 당신을 기다리기로 했죠. 당신도 알고 있을 거예요.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저의 마음을 말이에요.” 그녀는 심야의 디제이처럼 조용하게 말했다. 빗소리와 어둠의 소리가 크게 들렸지만 는개의 조용한 음성은 그 사이를 뚫고 마동의 귀에 제대로 전달되었다. 마동은 쏟아지는 졸음을 참으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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