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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18.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57

15장 6일째 저녁


457.


 “전 그 일을 당한 후 당신을 찾기 위해 나를 버리면서 살아왔어요. 학교에서는 촉망받는 엘리트 축에 속했어요. 장래도 어느 정도 보장이 되었어요. 하지만 전 이 회사를 선택했어요. 당신을 발견했으니까요. 전 당신을 선택했고 후회는 하지 않아요.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냈을 때 대학교의 친구들이 저에게 물었어요. 왜 하필, 이라는 분위기로 말이죠. 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어요.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일을 하고 싶을 뿐이야’라고 말이에요. 당신이 있는 이 회사를 선택했으니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거예요. 일단 생각한 건 생각한 대로 하는 거예요. 여자는 때론 무모할 정도로 과감할 땐 과감하다구요.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말이에요. 회사에서 일을 하는 동안 이 일이 정말 재미있다고 느꼈어요. 법관이 됐거나 금융업이나 초유의 기업에 다니고 있는 선배들이나 친구들은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일을 하고 있더군요. 적어도 전 이 회사에서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없었어요. 게다가 당신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며 간헐적으로 대화도 나눌 수 있었어요.” 는개는 틈을 두었다. 그 틈은 빗소리와 파도가 고요하게 부딪치는 소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대형을 유지했다.


 “나도 알아. 이제 알 것 같아”라고 마동은 그 틈에 자신의 조용한 목소리를 끼워 넣었다.


 “당신의 말대로 전 어떤 문을 통과해서 당신 곁으로 이렇게 다가온 거라구요. 그 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각의 문이 아니었어요.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특수한 문을 지나서 당신에게 이렇게 온 거라구요. 그 문이 이제 없어졌다고 해도 전 상관하지 않아요. 이제 당신과 함께 당신이 통과하려는 저 문을 지나갈 거예요. 저 문을 지나서 문이 닫혀버린 후의 문제 따윈 생각하기 싫어요. 이미 많은 문제를 끌어안고 있어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당신을 선택했다는 거예요.” 혹독한 추위에 위협을 당한 목소리였다.


 여자는 남자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널 위한거야. 라는 말 따위는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여자들은 왜 자신을 생각해주는 남자의 마음을 몰라주는 걸까. 마동은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너무 조용했다. 그녀가 옆에 있는지 구분도 가지 않았다. 옆에 있는 는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물이라고 불리는 것이 그녀의 눈에서 하염없이 흘러나와 소리를 내며 뺨을 타고 내려가고 있었다. 눈물은 짧은 시간에 계속 흘렀다. 그녀의 작은 몸에서 그렇게 많은 눈물이 흘러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는개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여러 가지 소리를 담고 있었다. 아득해진 시간의 소리, 그 속에 남겨진 희생의 소리, 뚜렷한 냉철함의 소리, 현실을 무너뜨리는 소리 그리고 고뇌와 기쁨의 소리까지 눈물 속에서 떨고 있었다. 내일이면 모든 것이 바뀔지도 모른다. 는개는 좀 더 괜찮은 세계에서 아름답게 살아가야 할 권리가 있다. 나 따위를 따라서 모든 것을 버린다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래전 너구리를 만나고 철길위에서 친구들이 분쇄되었을 때 저마다 바뀌어있는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사람들이 힘들어했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차들이 거꾸로 달린다거나, 출근하는 사람들이 수영복만 입고 출근을 한다거나, 하늘위로 물고기가 날아다닌다거나 하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새로운 세상이 도래해 사람들이 적응하지 못했으면 하고 생각한 자신을 책망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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